한국이 미국에 수출할 수 있는 자동차의 최대 대수는 얼마나 될까.

일단 현재 숫자를 살펴보자.

한국은 지난해 47만3천대를 미국에 수출했다.

이에 고무된 한국업계는 올해 60만대를 팔겠다고 계획하고 있다.

"그렇다면 ''1백만대''도 그리 높은 고지(高地)는 아니지 않겠는가"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기대에 대한 균형감각을 가지려면 한국이 수입하는 미국차 현황도 동시에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장사란 ''주고받는 정(情)''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틀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미국차 수입은 매우 우려할만한 수준이다.

지난해 한국이 사들인 미국차는 5천3백99대에 불과했다.

미국인들이 한국차 1백대를 사는 동안 한국인들은 겨우 1대 정도 구입한 형국이다.

비싼 부품값, 좁은 주차장, 살인적인 기름값, 주변을 의식하는 문화 등을 고려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특히 운전기사 없는 대형 미국차는 상상하기 힘들고 그런 ''체면비용''까지 감안하면 작금의 ''한.미자동차 교역불균형''은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방이 이를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데 있다.

그동안 한국의 개방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한국은 ''조세(租稅)주권''을 포기해 가면서까지 외제차에 부과되는 세금을 국내차 수준으로 깎아놓았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이 미국차를 외면하는 것은 한국시장을 고려해서 만든 미국차가 거의 없고 따라서 미국차의 경쟁력이 그만큼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한국소비자들에 대한 국세청의 보이지 않는 압력과 세무조사가 소비자들이 미국차를 외면하게 만드는 최대요인이라고 믿고 있다.

미국인들이 이에 대해 어떤 증거를 갖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시장과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미국인들이라는 사실이다.

아쉬운 것은 한국이다.

대우자동차에서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들의 좌절을 같이 나누고 또 더 이상의 실업자를 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미국인들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다.

장사에 자존심은 금물이다.

때맞춰 미국 상무부는 지난해 미국의 무역적자가 3천6백96억달러에 이르는 최악의 상황을 보였다고 최근 발표했다.

지난해보다 1천40억달러(30%)나 늘어난 것이다.

미국경기 또한 그동안의 확장추세가 현저히 꺾이고 있다.

특히 자동차업계는 재고물량증가로 고민하고 있다.

GM과 다임러크라이슬러는 각각 1만5천명과 2만6천명을 감원한다고 발표한 상태다.

미국의 지난해 자동차수입에 따른 적자는 1천50억달러에 달했다.

미국 전체 적자의 4분의 1이 자동차 때문이었다.

자동차가 통상현안으로 부각될 가능성은 그만큼 크다.

공교롭게도 현재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백악관 비서실장직을 맡고 있는 사람은 앤드루 카드다.

미국자동차공업협회 회장을 지낸 것을 비롯 GM 등 자동차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한국자동차업계에 대해 강경 노선으로 일관했던 그의 과거자세에 비추어 향후 한.미 자동차교역에 대한 카드 비서실장의 생각이 어떤 것일까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자동차와 관련, 미국은 한국정부에 대해 끊임없는 경고를 해왔다.

경고음이 오래 지속되다보니 양치기소년의 외침 정도로 격하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늑대출현 후에 허둥대는 것보다 ''정말 늑대가 올 것''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것이 옳다.

김대중 대통령은 3월초 워싱턴을 방문한다.

한국정부는 미국과의 대북(對北)문제 조율이 주요 의제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북한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경제가 더 중요하다.

''빈 호주머니 상태의 대화''는 항상 공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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