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욱 < 서울여대 교수 >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이는 금융시장에 접근이 가능한 기업들에 해당되는 얘기일 뿐이다.

금융시장에 접근할 수 없는 기업의 자금난은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저금리의 수혜자는 신용평가등급이 BBB- 이상인 기업들일 뿐 투기등급 기업은 회사채나 기업어음(CP)을 발행해 보았자 투자자를 구하기 어렵다.

투기등급 상품에 대한 시장 부재가 바로 현대건설 유동성 부족 문제나 현재 기업 자금난의 핵심이다.

투기등급 채권이 외면당하는 이유는 우선 기업들의 단기자금 조달원인 CP를 주로 사들여 온 종금사 및 투신사가 더 이상 시장 조성자의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97년말 30개에서 현재 4개로 감소해버린 종금사들은 투자등급 기업의 CP를 소화하기도 벅찬 실정이다.

시장조성자 역할을 하는 금융기관이 없다보니 투기등급을 받은 기업의 채권이 거래되는 소위 정크본드 시장도 형성될 수 없다.

또 8% 이상의 BIS(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요구하는 구조조정 기준도 문제점이다.

이로 인해 은행들은 투기등급 기업 채권에 대한 투자를 회피한다.

이같은 투자는 곧 자기자본비율의 하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자금난 문제를 해결할 뾰족한 수는 없다.

하지만 실현가능한 몇 개의 개선책은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금융기관 위험자산의 평가기준은 미래상환능력이므로 신용평가기관의 신용등급 평가에서도 현재 부채비율이나 차입금 비율보다 미래상환능력으로 기업의 신용등급을 판정하는 가중치를 높이는 것이다.

기업이 금융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 주자는 취지다.

둘째 모든 금융기관에 BIS 비율을 엄격히 적용하기보다 지방 은행이나 상호금융 등에 대해서는 BIS 기준을 신축적으로 적용해 국내 기업금융 전문기관으로 육성하는 방안이다.

셋째 기업금융의 공급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마지막 수단은 자금 수요자를 구조조정하는 도리밖에 없다.

이자보상 비율이 1백%를 밑도는 기업 중 미래회생능력이 없는 기업을 가능한 한 빨리 퇴출시켜야 한다.

현재 기업자금난 해소는 정부와 기업이 시장이 풀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신축적인 정책을 시행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