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죌릭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지명자가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현대전자의 회사채 인수 문제와 철강수입 규제를 공식 거론, 그동안 우려됐던 대로 미국 새 행정부는 대한(對韓) 통상정책에서 강성 기조를 띨 것임을 가시화했다.

미국은 국내 경기의 급격한 하강과 자국 제조업체들의 내수부진을 최대한 막기 위해 강력한 수입제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고 한국도 내수불황을 만회하기 위해 수출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이어서 앞으로 양국 통상전선에는 난기류가 짙게 깔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해 미국의 무역적자가 4천억달러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부시 행정부는 무역수지 적자폭을 줄이기 위해 강경한 무역정책을 펼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현재 양국간 쟁점이 되고 있는 통상 현안은 현대전자 문제와 철강 자동차 지식재산권 등으로 요약된다.

우선 현대전자의 회사채 인수 문제에 대해 미국은 조사 결과에 따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죌릭 지명자는 "한국 정부가 현대전자의 구조조정도 없이 구제금융을 제공한 것은 WTO의 보조금 규정에 비춰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미국이 현재 취할 수 있는 액션은 한국 정부에 양자협의를 요구하거나 WTO에 제소하는 것이다.

WTO가 보조금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릴 경우 현대전자 제품의 미국 수출은 사실상 어렵게 된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현대전자의 회사채 인수가 수출보조금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미국측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WTO제소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업계는 미국이 현대전자 문제를 직접 거론한 것은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 미 반도체 업계의 입김이 작용했기 때문에 당분간 양국간 통상 현안으로 남아 있게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철강의 경우 미국은 현재 자국업체의 도산이라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더욱 강력한 수입제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현재 미국은 전체 철강 수입품에 대한 긴급수입 제한 조치인 ''섹션 201'' 발효를 검토하고 있다.

죌릭 지명자는 "미국의 철강산업을 다루는데 있어 섹션 201이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국내 철강업체들의 미국 수출은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관계자는 "미국이 섹션 201을 발효할 경우 앞으로 뉴라운드의 협상에서 입지가 약화되기 때문에 쉽게 결정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죌릭 지명자도 미국 업계의 구조조정 노력을 지연시키거나 보호주의 수단으로 이를 이용하는 것은 지지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밖에 미국은 국내 자동차 시장의 개방 확대와 스크린쿼터 폐지, 지식재산권 보호 문제 등도 통상현안으로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황두연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사장은 "올해 한.미통상 관계의 기본틀이 급격히 바뀔 가능성은 없지만 미국 경기의 침체와 이에 따른 반덤핑제소 확대 등에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