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이었다.

나는 깊은 산골 아이들 앞에 서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선생이 된 것이다.

나는 심심했다.

늘 보는 산도 늘 보는 물도 늘 내 앞에 앉아 있는 얼굴이 감 같은 아이들도 심심했다.

그렇게 심심하게 지내던 어느 날 그 깊은 산중까지 월부 책을 파는 외판원이 찾아 왔다.

산넘고 물건너 온 이 외판원은 나에게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팔고 갔다.

여섯권이었다.

책이 좀 특이했다.

다른 책보다 판형이 넓고 글씨도 아주 컸다.

한마디로 그 책을 들고 있으면 ''폼''났던 것이다.

아마 나는 그 멋진 장정 때문에 그 책을 샀을 것이다.

곧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다.

눈이 하얗게 산과 마을과 강을 덮으면 우리들은 산으로 토끼 몰이를 갔고 눈이 녹으면 강 건너 산으로 나무를 하러 다녔다.

밤이면 나는 그 책을 읽었다.

끝도 갓도 없이 눈이 오는 날 책을 읽다가 문을 열고 보면 눈은 참 아름다웠다.

문 열어 보면 눈이 오고 있었고 문 열어 보면 눈이 그쳐 있었다.

밥 때 되면 얼른 밥 먹고 책보고 오줌 마려우면 얼른 일보고 책보고 그러다 보니 책 여섯권이 다 읽혀졌다.

그리고 방학이 다 끝났다.

방학 내내 우리 마을을 벗어나지 않고 나무하고 놀며 책을 다 읽고 집을 나섰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이웃 면에 있었다.

아,나는 그 때의 내 기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늘 보던 산천이 내게 새로 다가왔던 것이다.

산도 물도 들도 나무들도 사람들도 하늘을 나는 새들도 나도 눈이 부셨다.

세상에 문을 처음 열고 나온 듯 세상이 눈부셨던 것이다.

나는 설레었다.

누구나 다 겪었듯이 설렘은 희망과 불안이 반반인 상태를 말한다.

나는 그 때 그랬다.

나는 그 때까지도 문학에 대한 그 어떤 꿈도 갖고 있지 않았다.

나는 책에 대해 처음으로 외경감을 가졌다.

책 읽기는 그 무엇보다도 즐거웠고 나를 행복하게 했다.

나는 그 뒤로도 나에게 찾아오는 외판원으로부터 책들을 사기 시작했다.

열권짜리 다섯권짜리 전집들을 사서 차근차근 읽었다.

문학에 뜻을 둔 행동이 아니었다.

책을 통해 나는 세계를 이해해가는 즐거움을 배운 것이다.

내가 문학을 해 보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그렇게 촌구석에 박혀 책을 읽어가기 시작한 지 7,8년이 지나간 후였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아니 여러가지 것들을 해보고 싶었다.

희망이 생겨났던 것이다.

내 인생은 스물 한 살 때 ''도스토예프스키 전집''과 함께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