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애 < (주)서울포럼 대표 / 건축가 >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에서 말씀하셨다.

"잘살고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자는 것"이 문화의 힘이라고 하셨다.

김구 선생은 지금의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보고 계실까?

"자네들,정말 잘 살게 됐구먼.그런데 왜 그렇게 의가 나쁜가, 왜 그렇게 살기가 즐겁지 않은가" 하실 지도 모를 일이다.

배고프고 어려울 때는 오히려 의좋고 다정하고 똘똘 뭉쳐 일했다.

그러다가 어지간히 살게 되고 또 돈이 벌리는 사업이다 싶으면 의가 벌어지며,정은 커녕 싸움질을 하게 되는 ''날 인간 본성''이 전혀 다스려지지 않는 비문화적 상황이 지금의 우리 사회 아닐까.

문화의 힘이란 결코 독창적 예술작업이나 우아하게 예술을 즐길 줄 아는 삶의 방식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관광부가 애써서 ''올해의 문화인''을 선정하고,매년 ''문화의 해''를 정한다고 해서 문화의 힘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문화의 힘은 보다 보편적이고 일상적이고 근본적인 것이다.

인간사회의 모든 운영방식이 문화다.

먹는 음식,입는 옷,사는 집 같이 가장 일상적인 것이 문화다.

말하는 방식,사람을 대하는 방식,대화하는 방식,공부하는 방식도 문화다.

물건을 만들고 파는 방식,기업을 운영하는 방식도 문화다.

선거를 치르는 방식,정치자금을 만드는 방식,정치하는 방식도 문화다.

인간 본성을 다스리며,서로 모르는 인간들끼리 짐승처럼 싸우지 않도록 하는 사회의 기본 약속이 문화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지극히 비문화적인 문화,힘이 없는 문화,또는 문화 빠진 생존만 있다.

오히려 예술문화 역량으로 보면 상당한 수준을 이루어서 영화산업의 비약이 눈부시다.

또 음악이나 무대예술도 활발하게 세계로 진출하고 있고,스포츠 문화도 세계를 누비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의좋게 즐겁게 사는 삶의 방식으로서의 문화''는 퇴행에 퇴행을 거듭하는 것이,어떻게 보면 신기하기조차 하다.

개인문화 민간문화에 비해서 완전히 땅에 떨어지는 것 같은 ''공공문화'', 정말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악순환일까.

기본과 원칙이 지켜지는 것이 ''가장 높은 문화의 힘''이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이것이 이렇게도 안 되는가.

외세 무력 앞에서의 힘없음,독재 권력 앞의 공포,독단 권력의 무단 전횡이 있었을 때는 하다못해 비판을 아끼지 않고 공격할 적이라도 분명했다.

그래서 가슴이라도 떳떳하고 문화적 자존심이라도 있지 않았는가.

지금은 문화적 자존심이 자꾸 누더기가 돼가는 것이 더 살기 힘들고 전혀 즐겁지 않게 만든다.

의원 꿔주기를 보면서 부끄러워져 숨어버리고 싶다.

"네가 반장이 되고 싶으면 반을 바꾸면 돼,너를 뽑아줄 학생으로 반을 만들면 돼"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까.

어쩔 수 없는 방법이라는 합리화 설을 들으면 더욱 부끄러워져서 ''편법 입학의 부도덕성''을 비판하기도 어렵다.

정치자금이 어떠하든 횡행하는데 폭설에 집 앞 눈을 안치우는 시민의식의 퇴보를 비판하기도 어렵다.

"돈 받지 않으려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일하겠다고 생각하면 안돼,돈 안 받으면 눈도 치우지 마"라고 해야할까.

"화가 나면 무슨 일도 할 수 있단다"라고 아이들에게 얘기해야 할까.

정말 힘이 무섭다.

힘의 정치를 보는 것이 무섭다.

힘을 잃을까봐,힘을 못 가질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을 보기도 무서워진다.

강압에 의해 생긴 무서움이라면 차라리 떳떳하기라도 하련만,다같이 공범을 만드는 데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무섬증이 든다.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를 버텨 줄 ''문화의 힘''을 세울 수 있을까.

기본과 원칙이 지켜질 수 있게 할까.

''정의 정직 대의 공공의식 공정 서로나누기 신뢰 약속지키기''가 우리 모두의 문화적 가치가 될 수 있을까.

정말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문화의 힘''이다.

경제 기본도 정치 기본도 사회 기본도 ''문화의 힘''에서 비롯되니 부디 문화의 힘을 키워보자.

jinaikim@www.seoulforu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