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이정숙의 발인을 치른 지 일주일 후 이른 아침,진성호는 회사로 출근하는 차 안에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아내 이정숙의 발인식날 정경이 떠올랐다.

그녀의 짧지만 파란만장했던 35년이라는 생애와는 달리 너무도 조용하게 치러진 발인식이었다.

죽은 아내가 그에게 준 것은 애정어린 눈길이라기보다 비판의 시선이었으며,그가 아내에게 준 것은 고독뿐이었다.

그 고독이 궁극적으로 잉태한 것은 배신이었고,그 배신이 다다른 종착역은 결국 죽음이었다.

진성호는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 무슨 일이 있어도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순간 그는 이미지를 떠올렸다.

지난주 화요일 이후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이미지에게 무슨 나쁜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가중되었다.

진성호가 사념에 잠긴 동안 차는 대해실업 건물 현관 앞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3층에서 내려 회장실 쪽으로 향했다.

지난 월요일 전격적인 인사단행을 한 탓인지 사내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박인호 사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계열사 사장은 고문직을 맡도록 했고,황무석 부사장은 그가 원하는대로 골프장 경영을 맡겼다.

진성호가 회장실 앞에 도착하자 여비서가 문 앞에 서 있다가 그를 맞이했다.

진성호가 비서실로 들어서자 여비서가 뒤따라오며 낮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이미지씨가 전화했었습니다"

진성호는 뒤돌아보았다.

"모두 건강하게 잘 있다고요.다시 전화드린다고 했어요"

"연락처는 남기지 않았어?"

"남기지 않았는데요.제가 물었는 데도 다시 전화 주시겠다고만 했어요"

"분명히 모두 건강하게 잘 있다고 했어?"

"네"

진성호는 회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선 채로 왔다갔다 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지가 남겼다는 말이 맴돌았다.

''모두 건강하게 잘 있다''는 말.

''모두''란 이미지와 그녀의 뱃속에 있는 자신의 아이임을 의미했다.

현재까지는 사업에 온 정성을 쏟아붓느라 가정을 돌볼 시간이 없었다.

아니,가정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었다고 함이 맞을 것이라고 진성호는 생각했다.

진성호는 창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차도를 메운 차와 보도를 수놓은 보행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자신이 멀지않아 드디어 그 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왠지 그가 순간순간 느껴왔던 고독감이 사라진 듯했다.

그의 시야에 잡힌 많은 사람들에게 생애 처음으로 친밀감을 느꼈다.

멀지않아 이미지와의 사이에 자식을 갖는다는 기대감이 자신을 그토록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인터폰 벨소리가 진성호의 사색을 깨뜨렸다.

진성호는 버튼을 눌렀다.

"회장님,강연에 참석하시겠어요? 지금 진행중입니다"

여 비서의 목소리가 그의 귓속으로 후벼들었다.

오늘 아침 S대 경영대학 강성민 교수님을 초빙하여 각 계열사 사장단 및 중역들 참석하에 ''외국자본의 국내투자''라는 주제로 강연이 계획돼 있었다.

"참석하지"

진성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