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우 <고려대 교수.경영학>

수학자들은 스물한살의 나이에 요절한 프랑스의 갈루아(Galois)를 최고의 수학 천재로 인정하고 있다.

학문보다 정치에 더 관심이 많았던 갈루아는 정적이 파놓은 함정에 걸려들어 프로 총잡이와 결투를 하게 됐고 결국 총알 한발에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갈루아는 젊은 혈기에 결투를 신청하긴 했으나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투하기 전날 밤,유언서를 써 친구에게 보냈는데 이를 통해 그의 천재성이 밝혀졌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수학 천재는 ''체면''때문에 총알에 맞아 죽었고,수학계는 큰 손실을 입었던 것이다.

공적자금 64조원이면 금융구조조정을 마무리지을 수 있다던 장담이 헛소리로 밝혀졌다.

공적자금은 국가부채가 아니라는 대문짝만한 신문광고도 겸연쩍기 짝이 없는 해프닝이 되고 말았다.

''제2의 외환위기''로 비화되지 않을까 걱정되는 현재의 금융위기는 대우사태에서 시작됐다.

정부가 대우채를 안고있는 투신펀드에 대해서도 손실비율과 상관없이 원금의 95%까지 보장하는 터무니없는 조치를 내놓았고,손실을 모두 떠안은 투신사들은 ''쪽박''을 차게 됐다.

''부실채권은 얼마라도 되사주겠다''고 약속하고 팔아 넘긴 제일은행이 깡통이 된 채권을 들고 왔다.

투신사들을 연명시키고 또 제일은행의 부실채권을 인수하느라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이 들어갔던 것이다.

종금사의 도산이 계속되고,대형은행들이 BIS비율 맞추기에 급급,대출을 기피하면서 금융경색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금융전문가들과 국회의원들까지 나서 공적자금 추가조성의 필요성을 강변했으나 당시 재경부장관은 도덕적 해이 운운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당시 공적자금 추가조성의 대안으로 내놓은 정책은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대우채 손실로 부실화된 투신사들의 BIS비율을 맞추기 위해 산업은행이 정부로부터 출자 받은 공기업주식을 현물출자 형식으로 투신사에 넘겼다.

정부보유 공기업주식이 산업은행의 BIS비율을 맞춰주고,다시 투신사의 BIS비율을 맞추기 위해 ''파견''되는 웃지 못할 작태가 벌어졌다.

재벌기업이 부채비율 가이드라인을 맞추기 위해 써먹었던 계열사간 순환출자 방식을 정부가 벤치마킹한 것이다.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공적자금으로 다급하게 사들인 부실채권은,바겐세일하는 바람에 제값을 받을 수 없었다.

더구나 부실채권 매각시에도 부도가 나면 되사주겠다는 풋백옵션을 약정한 것도 많아 추가 손실이 예상되고 있다.

금융지주회사를 설립,지주회사의 차입금으로 자회사인 은행의 BIS비율을 맞춰보려는 꼼수도 금융노조의 파업사태와 맞물려 쓸 수 없게 됐다.

예금보험공사를 통해 국회 동의가 필요없는 무보증채권을 발행하려는 계획도 눈가림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공적자금 64조원이면 충분하다고 큰소리 친 ''체면''때문에 금융위기만 심화시키고 말았다.

경제 지휘봉을 물려받은 진념 재경부장관은 공적자금 문제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추가조성의 필요성을 강변하고 나섰다.

공적자금에 대한 사과는,관리상의 부실뿐만 아니라 추가조성 시기를 놓친 점도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추가적으로 조성되는 공적자금의 규모는,퇴출기업의 판정 및 부실금융기관의 정리 시나리오와 연계해 정확하게 산정해야 한다.

너무 적게 조성, 군색하게 땜질하면 또 터질 수 있고 이와 반대로 너무 많이 조성할 경우에는 집행상의 낭비가 따르게 된다.

수개월 전의 추정치에 근거한 40조원이란 수치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공적자금의 추가 투입이 이루어진 다음엔 철저하고 투명한 사후관리를 해야한다.

공적자금이 제대로 관리된다면,공적자금으로 취득한 금융기관의 주식을 제값 받고 처분해 투하된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것이다.

공적자금 추가조성을 위한 국회 동의과정에서 심한 질책을 받게 돼 있다.

그렇더라도 ''체면'' 때문에 총 맞아 죽는 사태가 발생돼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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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약력=△고려대 경영학과 △미국 조지아대학 경영학 박사 △한국 및 미국공인회계사 △현(現)세제발전 심의위원.정부투자기관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