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정세에 변혁의 조짐이 뚜렷하다.

한반도에서 진행되고 있는 남북한 평화 분위기 정착이 가장 큰 원동력이다.

내년초로 예상되는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이 지역 경제구도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요소다.

중국 사회과학원 산하 세계경제정치연구소의 위용딩(余永定) 소장은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반도의 평화정착은 아.태지역의 갈등구조를 허물고 중국의 WTO 가입은 아시아지역 경제의 협력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될것"이라고 진단했다.

베이징 창안(長安)대로에 자리잡은 사회과학원의 위 소장 연구실을 찾아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 등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 만난 사람 = 한우덕 베이징 특파원 >

---------------------------------------------------------------

- 한반도에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한반도와 접한 중국은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위 소장 =중국은 결코 남북한의 분열에 따른 긴장을 원하지 않는다.

중국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주변지역의 평화와 안정이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한 통일은 중국에 "나쁠 것이 전혀 없는 상황"으로의 진전이다.

통일후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할 당위성은 점차 사라질 것이다.

이는 아.태지역의 군사대치 상황을 크게 완화시켜 결국 중국의 군비감소로 연결된다.

대만문제에 대한 중국과 미국의 갈등 수위도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는 통일이 되더라도 중국에 위협적인 존재로 등장할 수 없을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중국이 무엇 때문에 한반도의 분열을 바라겠는가.

모든 나라는 고유의 역사와 문화, 민족감정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남북한 통일 역시 고유의 특성에 따라 추진돼야 한다.

남북한 통일은 기본적으로 민족내부의 문제라는게 중국정부의 입장이다.

- 중국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가장 큰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중국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 위 소장 =중국과 북한이 역사적으로 혈맹관계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고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크다고는 말할수 없다.

중국은 상대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을 터부시한다.

북한 역시 한-중수교 이후 중국의 간섭을 달갑지 않게 여겨 왔다.

중국은 남북한 문제에 있어서 제3자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중국은 그러나 남북한 양측과 견고한 외교관계를 갖고 있는 이웃국가라는 점에서 양측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건설적인 역할을 할 준비가 돼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 한국의 대(對)북한 경제지원 사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한국의 대북한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 위 소장 =김대중 정부의 햇빛정책은 한반도 현실에 가장 적합한 정책수단이라고 본다.

한국이 북한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도 명확하다.

같은 동포민족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북한지원을 놓고 여러 의견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대북지원에는 어떠한 정치적 조건을 붙이지 말아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지원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하나의 정치노선이 될수 있지 않은가.

북한지원은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들에게 가장 시급한 분야는 전력 통신 등 인프라시설 확충과 식량문제 해결이다.

이 분야를 한국이 지원해 주고 그 다음 단계의 산업을 일으키는 것은 북한이 알아서 해야할 문제다.

-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 노선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는가.

<> 위 소장 =개혁개방은 국가발전을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북한이 국가발전 전략에 맞는 개혁노선을 추진하고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중국식은 아니라고 본다.

중국과 북한은 경제규모와 면적등 모든 면에서 차이가 난다.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지도자의 선택이 국가발전 방향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이다.

- 일각에서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 3국의 경제협력제고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그 방안으로 이들 3국이 참여하는 경제공동체가 논의되고 있다.

<> 위 소장 =나 역시 동북아 3국간 경제협력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경제공동체 형성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적극 추진하려는 한국의 입장은 이해한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 모두 긴밀한 경제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3국 경제협력체의 중심축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동북아 3국 경제협력체 형성에는 "일본"이라는 요소가 장애로 등장하고 있다.

일본은 자신이 서방국가인지, 아니면 아시아 국가인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놔야 한다.

일본이 아시아국가들과 명운(命運)을 같이 하겠다는 준비가 돼있어야만 공동체 논의가 가능하다.

일본은 미국과 특수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본과 미국의 방위조약대상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심지어 대만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과 일본의 협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유럽연합(EU)은 유럽 각국이 하나된 협력체를 만들어 미국과 대항하자는 속셈을 갖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등 3개국에는 지금 이같은 통합추진력이 결핍돼 있다.

- 아시아지역에서 중국과 일본이 정치.경제적 이익을 놓고 첨예하게 맞서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인가.

<> 위 소장 =중국과 일본의 경제관계를 단순 갈등구조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중국은 WTO가입 이후에도 최소한 10년간 6~8%의 경제성장 속도를 유지할 것으로 확신한다.

중국은 향후 25년안에 일본을 따라잡고 아시아 최대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다.

그러나 주민들의 소득수준을 놓고 볼때는 중국이 일본을 따라잡기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결국 일본은 중국의 시장을, 중국은 일본의 기술및 자본을 원하는 양자협력 체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 그렇다면 동북아 3개국 협력의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무엇인가.

<> 위 소장 =중국과 한국이 우선 경제협력범위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

물론 중국과 일본, 한국과 일본간에도 협력의 틀을 확고히 짜놓아야 한다.

이를 통해 아시아역내 국가간 경제협력이 다른 지역과의 협력에 우선해야 한다는 것을 일본에 인식시켜야 한다.

중국은 홍콩 대만 등 중화권 국가와의 협력을 동남아시아및 동북아 등으로 확대한다는 기본 전략을 갖고 있다.

- 중국은 곧 WTO에 가입한다.

WTO 가입으로 어떤 변화가 예상되는가.

<> 위 소장 =WTO 가입은 중국의 개혁개방정책 추진이후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중국경제 패러다임의 변혁이다.

중국은 관세를 낮추고 시장보호조치를 철폐하는 등 글로벌 경제체제로 진입하게 된다.

이는 중국 국내산업에 엄청난 충격을 줘 산업구조의 혁신적인 개편을 몰고올 것이다.

효율성이 낮은 국유기업이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WTO 가입으로 중국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중국은 그러나 지난 20여년간의 개혁개방정책을 통해 많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중국 경쟁력의 밑바탕은 역시 노동력이다.

중국은 각 단계의 기술분야에서 사용할수 있는 노동력층이 두텁다.

취업경쟁 심화로 노동의 질도 높아지고 있다.

중국에는 전통 제조산업이 있는가 하면 첨단 정보기술산업도 있다.

기술이 동부연안에서 서부지역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다.

중국시장은 매우 크다.

중국에는 도시와 농촌간 서로 다른 소득수준의 시장이 존재하고 있어 어느 상품이라도 소화가 가능하다.

이같은 잠재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WTO 체제에 적용할 수 있느냐에 WTO 가입의 성패가 달려 있다.

- 중국의 WTO 가입은 한-중 경제협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겠는가.

<> 위 소장 =한-중 무역구조에는 몇가지 문제가 있다.

최근 벌어진 마늘 분쟁이 그 한 예다.

마늘분쟁은 상호 국제상식을 벗어난 보호무역조치에 그 원인이 있다.

WTO 가입 이후에는 이같은 국지적 무역분쟁이 WTO틀 안에서 해결될 것으로 보여 양국 교류협력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무역불균형이다.

지금과 같이 한국이 절대적인 무역흑자를 지속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이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woodyhan@hankyung.com

---------------------------------------------------------------

[ 위용딩 누구인가 ]

위용딩(余永定.52) 세계경제정치연구소 소장은 중국에 서방경제학을 체계적으로 소개한 대표적인 학자다.

그는 특히 서방경제이론을 이용해 중국경제를 분석해 왔다.

연구논문 및 보고서가 대부분 이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의 대표적 저서인 "서방 경제학"은 중국 주요 대학의 대학원 교재로 쓰이고 있다.

거시경제 분야를 깊게 연구해온 그는 중국의 국제금융센터 소장을 역임하는 등 금융분야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왔다.

현실적으로는 점진적 개방과 발전을 주장한다.

위 소장은 "학사자격증이 없는 박사"로 통한다.

대학을 진학할 나이에 터진 문화대혁명으로 학업을 중단, 지난 69년부터 10년간 기계공장에서 노동을 해야 했다.

77년에 일반 직원자격으로 사회과학원에 입사, 학문의 길로 접어드는 계기를 마련했다.

88년 영국 유학길에 오른 그는 94년 옥스퍼드대에서 "중국 안정화 정책에 대한 거시경제 분석"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사회과학원으로 돌아와 연구와 교수생활에 몰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