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경제가 강한 이유는 무엇인가.

"해고할 수 있는 자유 때문이다"

어찌 들으면 과격하기 이를 데 없다.

은행구조조정으로 시끄러운 한국이 미국식 사고가 짙게 베어있는 이같은 표현을 어떻게 받아들일 지 궁금하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이 평소 차분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앨런 그린스펀 연준리(FRB)의장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면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지난 11일 주지사들에게 행한 연설에서 그린스펀의장은 "최근 수년간 선진국들중 생산성향상이 현저히 나타난 곳은 미국밖에 없다.
그것은 정보기술(IT)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 때문이다. IT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는 일본과 유럽에게도 똑같이 열려 있었다. 하지만 유럽과 일본이 미국처럼 이를 활용하지 못한 요인은 결국 "고용과 해고의 자유(freedom to hire and fire)"가 없는 시장구조에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과 일본의 노동시장의 경직성(rigidity)이 유럽과 일본의 장기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라는 분석은 그동안 미국쪽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오던 것이다.

하지만 그린스펀 의장이 이날처럼 확신에 찬 분위기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역설한 적은 없었다.

그는 "유럽과 일본의 IT에 대한 투자수익률이 미국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이유는 유럽이나 일본쪽의 해고비용이 미국보다 현저히 높기 때문"이라고 부연하기까지 했다.

그린스펀의장은 그 다음날인 12일 뉴욕 외교관계위원회에서 행한 연설에서도 매우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세계경제의 지구촌화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또다른 국제금융위기는 불가피하다"고 전망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같은 국제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각국은 강력한 은행시스템은 물론 활발한 자본시장도 동시에 구축돼야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만약 한쪽(은행권)이 무너지면 다른 한쪽(자본시장)이 이를 메꿀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은행권 한쪽에만 의존하던 태국과 일본이 위기를 효율적으로 극복할 수 없었던 반면,양쪽 시장이 골고루 발달된 미국과 스웨덴은 위기를 쉽게 넘길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금융감독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정부 또한 금융시스템을 감독할 수 있는 강력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한다"고 역설한 그린스펀은 "그 이유는 투자자들이 충분한(full and timely) 경제금융정보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금융감독기능강화는 특히 "공적자금을 내놓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린스펀의 연설은 한국을 겨냥한 것같은 느낌을 줄 정도였다.

은행구조조정이라는 단어속에 숨겨진 가장 핵심적인 골자는 결국 "IT도입에 따른 고용불안문제"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기계가 완전한 대체재일 수는 없다.

하지만 기술진보에 따라 둘간의 공집합은 날로 확대되어가고 있다.

"기계가 사람보다 높은 수익률을 제공할 수 있다면 기계를 쓸 수 있는 자유가 미국에는 보다 광범위하기 인정되고 있고 따라서 그런 "잔인한 대체(cruel replacement)혁명"이 미국경제의 오늘이 있게 했다"는 것이 그린스펀의 얘기다.

미국 노동시장유연성도 공짜로 얻어진 것은 아니다.

81년8월 연방 항공국관제사들의 파업당시 레이건 행정부가 보여준 결연한 의지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노조원 1만7천여명중 76%인 1만3천여명이 작업을 거부했다.

이에대해 레이건은 48시간 안에 업무에 복귀한 1천여명을 제외한 나머지 전원을 해고했다.

재고용도 없었다.

기실 IT는 레이건보다도 더 무서운 "철밥통 분쇄기"임에 틀림없다.

파업을 통한 고용보장은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아마 구조조정의 핵심은 이를 인정하는 데 있을 지 모른다.

워싱턴 특파원 양봉진 www.bjGlob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