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Economist 본사독점전재 ]

한 나라의 증권거래소만큼 "불변함"이 돋보이는 곳도 드물다.

입구에 박힌 단단한 기둥에서부터 고동치는 장내의 열기까지.

이같은 증권거래소를 보고 있노라면 어떠한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현재 세계의 증권거래소들은 대부분 격렬한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기존 증권거래소들은 서로 전략적 제휴나 인수.합병(M&A)을 통해 "디지털 경쟁자들"을 이겨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심지어 뉴욕 증권거래소까지 걱정하고 있는 눈치다.

이같은 불안상태는 두가지 외부요인 때문이다.

첫째는 "전자화".

날이 갈수록 강해지는 컴퓨터와 인터넷의 힘으로 주식거래는 보다 쉽고 저렴해졌다.

그 결과 중간 매개체라 할 수 있는 증권브로커나 주식거래업체들은 수수료를 내려야한다는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전자(가상)증권거래소"라는 새로운 경쟁자와 승부해야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두번째 요인은 국경을 초월한 거래에 대한 투자자들의 열망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투자자나 기업 투자은행들이 너나할 것 없이 모두 국경이란 진부한 경계를 넘어서 저렴한 비용으로 주식을 거래하고 자금을 조달하기 원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경향은 유럽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유럽연합(EU)에선 유로화 도입으로 각 회원국의 증권거래소를 개별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거래소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세계화"다.

이들이 지향하는 바는 하루 24시간 내내 세계적인 기업들의 우량주를 마음껏 거래할 수 있는 글로벌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거래소들이 이 목표를 향해 뛰고있는 것은 자신들이 하지 않으면 가상거래소들이 먼저 결승점에 도달할 게 분명한 탓이다.

왜 이제껏 글로벌증시는 출현하지 못했을까.

IBM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와 같은 우량 대기업들의 주식은 어느 외국투자자들이나 손에 쥐고 있게 마련인데도 말이다.

상품이나 외환은 거래가 되고 있는데 왜 유독 주식은 글로벌거래의 대상이 되지 못한 것일까.

그 답은 부분적으로는 투자자와 주식 발행인의 보수성에서,그리고 정부의 규제와 회계기준에서 찾을 수 있다.

거래소측의 철저한 보호주의도 여기에 한 몫을 했다.

다행스런 일은 이런 모든 요소들이 조금 더디긴 하지만 차츰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세계화 얘기가 빈번히 나옴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아직은 놀라울 정도로 편협한 경향이 있다.

어떤 이들은 외환거래에 따르는 위험에 대해 걱정하고,어떤 사람은 "원래 알던 회사들의 주식을 거래하는 게 맘이 편하다"는 좀 더 단순한 이유를 댄다.

하지만 투자자나 기업측이 모두 "국경없는 거래"가 가져다 줄 혜택에 대해 점차 인식을 달리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미 최소한 두 곳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

하나는 뉴욕증권거래소로 곧 유로넥스트나 파리 암스테르담 브뤼셀 거래소들을 삼킬 전망이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런던과 프랑크푸르트의 합병,거기에 미국의 나스닥까지 가세한 "3자연합"이다.

그리고 어쩌면 전세계 모든 거래소들이 뭉쳐 커다란 "단일시장"을 창출한다는 시나리오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과거 경험으로 볼 때 증권거래소들간의 제휴나 M&A에는 많은 장애물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거래소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한데다 규제기준면에서도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장은 단일시장 같은 엄청난 수준을 바라기는 힘들다.

정리=고성연 기자 amazingk@ hankyung.com

<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6월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