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의 수요자와 공급자가 금융기관의 서비스를 찾는 전통적 이유는 직접 금융에 수반되는 여러 가지 거래비용이 크기 때문이며 거래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시장지식에 근거한 정보의 생산,거래의 효율성 제고,계약의 이행을 감시하는 대리인의 기능이 금융기관 경쟁력의 기반이 돼 왔다.

그러나 이런 부분에서의 경쟁적 우월성은 최근 정보기술이 "빛의 속도"로 발달함에 따라 위협을 받기에 이르렀다.

인터넷을 통한 직접금융의 증가와 금융정보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회사들의 출현 등이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금융기관의 전통적인 기능을 약화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가 곧 금융기관의 쇠퇴를 의미하는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이처럼 전통적인 기능이 약화되고 있는것은 사실이지만 금융기관 자체가 쇠퇴하는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중개적 역할을 하는 뮤추얼펀드 등이 각광을 받고 있다.

이는 그동안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던 금융기관의 새로운 기능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인데 그 것이 바로 위험관리 기능이다.

근본적으로 기업은 위험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기술의 불확실성,제품 수요에 대한 불확실성,원자재의 공급 및 가격에 대한 불확실성과 자본비용,특히 이자율에 대한 불확실성,환율의 불확실성,자금조달의 불확실성 등 기업의 경영에 관련된 모든 요소에 위험이 내재돼 있다.

이같은 여러 종류의 위험 중에는 기업의 본질로 기업 내부에서 관리돼야 하는 것이 있으나 일부 내부적으로 흡수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이러한 위험을 패키지화하여 시장을 통해 판매하거나 자체적으로 부담해 주는 기능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 바로 금융기관이다.

따라서 금융시장은 하버드대학 캠벨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위험을 패키지화하고 거래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뱅커스트러스트의 전 회장인 샌포드는 "위험을 회피하고자 하는 것이 가장 큰 위험이다"라고 역설적으로 이야기한 바 있다.

이는 위험을 다루어야 하는 금융기관이 위험을 회피하려고만 한다면 생존이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우리 금융계는 이러한 위험관리의 기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며 이에 대한 문화가 성립돼 있지 않다.

현재 국내 금융계의 위험관리 수준은 시장위험 및 신용위험에 대한 시스템 도입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시스템 도입을 단기간에 완료하고자 서두른 결과 도입된 시스템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으며 한국적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이는 왜 위험관리를 해야 할 것이며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검토하지 못하고 일단 시스템을 갖추고 그 활용을 고려하겠다는 식의 역순으로 진행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아마도 금년내로 대개의 금융기관이 시장위험 및 신용위험에 대한 시스템을 갖추게 될 것이다.

역순이 되었으나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 시스템이 사장되지 않도록 전략적 활용 문제와 시스템 자체의 재조율,그리고 미비한 부분의 보완이 곧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금융기관이 직면하고 있는 위험이 위에서 언급한 시장위험과 신용위험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베어링은행 다이와은행,그리고 스미토모은행 등의 경우에서 보듯이 유구한 전통을 자랑해온 금융기관들을 파산 혹은 그에 가까운 지경으로 몰고 갈 정도로 심각한 종류의 위험이 존재한다.

금융기관들이 직면한 상황이 이처럼 심각하지만 이에 대해 아직 우리 금융계는 연구와 시스템화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 않다.

이러한 위험을 우리는 운영위험이라 부른다.

현재 이러한 종류의 위험에 대한 정의 및 관리의 방법론은 아직 확립돼 있지 않다.

그러나 외국의 선진은행들은 이미 과거 수년간 이 문제에 대해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연구해오고 있다.

더욱이 이 운영위험의 경우,특히 국내와 국외 금융기관의 특성이나 문화적 차이가 커 외국 선진 은행들이 제시하는 방안을 도입하는 방식을 채택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우리 금융계는 이제라도 집중적인 연구를 통해 방법론을 도출하고 시스템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선 먼저 국제적 경쟁력 제고를 위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며 부단한 연구와 개발노력,그리고 위험관리 문화의 형성이 시급하다.

tskim@ kgsm.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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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샌타클래라대 경영학 석사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재정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