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차라리'와 '어차피' .. 이영미 <연극평론가>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한 대중음악 평론가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웃은 적이 있다.
우리 나라 대중가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부사어가 "차라리"와 "어차피"
라고.
한 마디 부사어가 세상에 대한 태도나 노래의 질감을 어쩌면 이렇게 적확
하게 드러낼까.
"차라리"와 "어차피"란 말을 들으면 그 뒤에 따라나올 구절이 바로 떠오른다
"차라리 만나지나 말 것을" "어차피 떠나야할 사람"
이런 구절들이 우리 입에서 거의 공식처럼 튀어나오는 경험을 하면서 우리가
볼장 다 본 상황에 얼마나 익숙해 있는지 깨닫는다.
차라리와 어차피는 볼장 다 본 상황, 무언가 개선될 여지가 거의 없는
자포자기의 상태이다.
물론 이 부사어는 젊은 감각의 대중가요에서는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이 말이 풍기는 느낌은 트로트 같은 흘러간 대중가요, 혹은 성인 취향의
노래이다.
트로트가 만들어낸 신파적 태도의 산물인 것이다.
세상은 자신이 바라는 최소한의 욕구조차 해결해주지 못하지만 그 상황은
너무도 강고하다.
이를 극복하거나 일말의 반항조차 못한 채 주어진 상황에 끌려가면서도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슬픔의 응어리 때문에 자학도 하고 자기연민과 자기
합리화도 하는 복잡한 심사가 바로 트로트의 태도이다.
자학과 자기합리화, 자기위안의 대표적 대사들이 "제가 죄인입니다" "여자
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차라리" "어차피" 이런 말들이다.
지금의 30대나 40대 초반만 하더라도 트로트는 어릴 적부터 좋아한 노래가
아니었다.
차라리와 어차피가 만들어내는 그 끈적끈적하고 구질구질한 질감, 바지
가랑이 부여잡으며 흑흑 흐느끼고 평생 속앓이하며 살아가는 그 삶의 질감이
질색할 정도로 싫었던 것이다.
"아, 촌스러워"를 외치면서 이런 노래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상큼하고
깨끗한 포크송이나 세상에 대해 절규하고 외쳐대는 록을 즐겨 부르지
않았던가.
이 젊은이들의 노래는 "차라리"와 "어차피"의 세계가 아니라 "그래도"
"이제는" "우리는"의 세계였던 것이다.
"우리는 어른들과 달라" "그래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살아갈거야" "이제는
앞만 보고 가는거야"
이것이 젊은이들의 대사였다.
그러나 이들 역시 서른 고개를 넘고 3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흘러간
옛노래나 트로트가 가슴을 치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된다.
술자리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손뼉 치며 불렀던 그 촌스러운 노래
들이 어느 날 갑자기 저 밑바닥 가슴 한 곳을 울리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제 세상과 인생의 쓴 맛을 알기 시작하는 나이.
세상이 얼마나 강고하며 그에 비해 자신의 힘은 얼마나 무력한지를 깨닫는
나이.
더 이상 비판과 변화의 노력을 할 기운조차 다 빠져버려 완전히 무력감과
자포자기에 사로잡힌 나이.
지지리 못나게 산 부모세대를 이해하게 되는 나이.
그런 자기 자신이 불쌍하고 서러워지는 나이가 된 것이다.
"차라리"와 "어차피"가 절실히 이해되는 세상은 사람들이 희망을 잃고
무력감에 주저앉는 세상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트로트와 신파는 1980년대에 확연히 힘이 꺾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시대에도 30대 중반만 넘으면 여지없이 "차라리"와 "어차피"가
된다.
그것은 뭘 의미하는가.
우리 사회가 여전히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아직 젊은 피가 식지 않았을 서른 중반에 조로해 버리고, 마흔이 넘으면
노후 걱정을 하고 사는 이런 사회에서 창의력과 새로운 발상을 내놓으라고
다그친들 나올 리 만무하다.
그저 영어나 컴퓨터처럼 단순 기능을 익혀 변화의 흉내만 낼 뿐 근본적으로
새로운 발상과 노력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이다.
정치권은 이제 "삼국지의 시대"를 넘어서 "열국지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하도 기가 막힌 유권자들은 또 "차라리"이다.
"차라리 그게 낫겠어. 아예 영남당도 두세 개, 호남당도 두세 개, 충청당도
두세 개 생기면 그 밑도 끝도 없는 삼국지는 끝날 거 아냐"
시민운동이 낙천이라는 네거티브 운동을 전개하자 큰 호응을 얻은 것도
따지고 보면 "차라리"의 태도이다.
"차라리 싹 물갈이 해버렸으면"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래도 이번 선거로 중증이 더 심각해지지만 말았으면 좋겠다.
선거 끝나고 "차라리 유신시대가 나았어. 투표는 해서 뭐해, 어차피 그
밥에 그 나물일 텐데"라고 중얼거리는 사람들이 좀 줄어들기만 해도 좋겠다.
< ymlee@knua.ac.kr >
-----------------------------------------------------------------------
<> 필자 약력
=<>고려대 국문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연구소 연구원
<>연극평론가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6일자 ).
우리 나라 대중가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부사어가 "차라리"와 "어차피"
라고.
한 마디 부사어가 세상에 대한 태도나 노래의 질감을 어쩌면 이렇게 적확
하게 드러낼까.
"차라리"와 "어차피"란 말을 들으면 그 뒤에 따라나올 구절이 바로 떠오른다
"차라리 만나지나 말 것을" "어차피 떠나야할 사람"
이런 구절들이 우리 입에서 거의 공식처럼 튀어나오는 경험을 하면서 우리가
볼장 다 본 상황에 얼마나 익숙해 있는지 깨닫는다.
차라리와 어차피는 볼장 다 본 상황, 무언가 개선될 여지가 거의 없는
자포자기의 상태이다.
물론 이 부사어는 젊은 감각의 대중가요에서는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이 말이 풍기는 느낌은 트로트 같은 흘러간 대중가요, 혹은 성인 취향의
노래이다.
트로트가 만들어낸 신파적 태도의 산물인 것이다.
세상은 자신이 바라는 최소한의 욕구조차 해결해주지 못하지만 그 상황은
너무도 강고하다.
이를 극복하거나 일말의 반항조차 못한 채 주어진 상황에 끌려가면서도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슬픔의 응어리 때문에 자학도 하고 자기연민과 자기
합리화도 하는 복잡한 심사가 바로 트로트의 태도이다.
자학과 자기합리화, 자기위안의 대표적 대사들이 "제가 죄인입니다" "여자
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차라리" "어차피" 이런 말들이다.
지금의 30대나 40대 초반만 하더라도 트로트는 어릴 적부터 좋아한 노래가
아니었다.
차라리와 어차피가 만들어내는 그 끈적끈적하고 구질구질한 질감, 바지
가랑이 부여잡으며 흑흑 흐느끼고 평생 속앓이하며 살아가는 그 삶의 질감이
질색할 정도로 싫었던 것이다.
"아, 촌스러워"를 외치면서 이런 노래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상큼하고
깨끗한 포크송이나 세상에 대해 절규하고 외쳐대는 록을 즐겨 부르지
않았던가.
이 젊은이들의 노래는 "차라리"와 "어차피"의 세계가 아니라 "그래도"
"이제는" "우리는"의 세계였던 것이다.
"우리는 어른들과 달라" "그래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살아갈거야" "이제는
앞만 보고 가는거야"
이것이 젊은이들의 대사였다.
그러나 이들 역시 서른 고개를 넘고 3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흘러간
옛노래나 트로트가 가슴을 치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된다.
술자리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손뼉 치며 불렀던 그 촌스러운 노래
들이 어느 날 갑자기 저 밑바닥 가슴 한 곳을 울리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제 세상과 인생의 쓴 맛을 알기 시작하는 나이.
세상이 얼마나 강고하며 그에 비해 자신의 힘은 얼마나 무력한지를 깨닫는
나이.
더 이상 비판과 변화의 노력을 할 기운조차 다 빠져버려 완전히 무력감과
자포자기에 사로잡힌 나이.
지지리 못나게 산 부모세대를 이해하게 되는 나이.
그런 자기 자신이 불쌍하고 서러워지는 나이가 된 것이다.
"차라리"와 "어차피"가 절실히 이해되는 세상은 사람들이 희망을 잃고
무력감에 주저앉는 세상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트로트와 신파는 1980년대에 확연히 힘이 꺾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시대에도 30대 중반만 넘으면 여지없이 "차라리"와 "어차피"가
된다.
그것은 뭘 의미하는가.
우리 사회가 여전히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아직 젊은 피가 식지 않았을 서른 중반에 조로해 버리고, 마흔이 넘으면
노후 걱정을 하고 사는 이런 사회에서 창의력과 새로운 발상을 내놓으라고
다그친들 나올 리 만무하다.
그저 영어나 컴퓨터처럼 단순 기능을 익혀 변화의 흉내만 낼 뿐 근본적으로
새로운 발상과 노력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이다.
정치권은 이제 "삼국지의 시대"를 넘어서 "열국지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하도 기가 막힌 유권자들은 또 "차라리"이다.
"차라리 그게 낫겠어. 아예 영남당도 두세 개, 호남당도 두세 개, 충청당도
두세 개 생기면 그 밑도 끝도 없는 삼국지는 끝날 거 아냐"
시민운동이 낙천이라는 네거티브 운동을 전개하자 큰 호응을 얻은 것도
따지고 보면 "차라리"의 태도이다.
"차라리 싹 물갈이 해버렸으면"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래도 이번 선거로 중증이 더 심각해지지만 말았으면 좋겠다.
선거 끝나고 "차라리 유신시대가 나았어. 투표는 해서 뭐해, 어차피 그
밥에 그 나물일 텐데"라고 중얼거리는 사람들이 좀 줄어들기만 해도 좋겠다.
< ymlee@knua.ac.kr >
-----------------------------------------------------------------------
<> 필자 약력
=<>고려대 국문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연구소 연구원
<>연극평론가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