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의 경기가 예상보다 훨씬 더 좋아진 덕분에 당초 목표보다
3조5천억원의 세금이 더 걷혀 1조5천억원 정도의 세계잉여금이 날 것으로
집계되자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빈곤퇴치와 저소득층 생활안정에 쓰겠다며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키로 했다고 한다.

정부는 추경편성의 이유로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의 최대 피해자가
저소득 빈민층이며, 빈부격차를 좁히지 않으면 나라의 안정까지 해칠 수
있기 때문에 소득분배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물론 일리가 있다.

그러나 산처럼 쌓인 국가채무를 생각하면 이런 식의 재정지출 확대에 선뜻
동의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빚은 그대로 놔두고 예상보다 더 늘어난 수입은 우선 쓰고 보자는 개인이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부와 국민회의가 세계잉여금은 재정적자를 줄이는데 우선적으로
쓰겠다며 제정을 추진하던 "재정적자 감축 특별법"의 정신과도 정면으로
상충된다.

비록 이 법안이 아직껏 집권당의 서랍에 들어있지만 그 취지에는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는 것 아닌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국가채무가 엄청나게 늘었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지난 연말 기준으로 중앙정부의 빚이 90조원, 지방정부의 빚이 18조원으로
국가채무는 모두 1백8조원에 달한다.

외환위기 이전인 96년의 50조원에 비해 두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정부가 지급을 보증한 82조원의 보증채무는 별도다.

같은 기간 중 국민 1인당 국가채무액도 1백9만원에서 두배 이상인 2백30만원
선으로 늘어났다.

바로 이런 배경 때문에 정부와 여당이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나라빚을
줄이려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세계잉여금을 공돈처럼 여기는 듯한 재정운영은 어떻게 봐도
정도라고 하기 어렵다.

이런 선심성 재정집행이 이루어진다면 2004년까지 재정균형을 달성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조차 공염불로 끝날 우려가 크다.

더구나 한번 늘어난 재정지출은 다시 줄이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점을
생각하면 엄청난 국가채무를 앞으로 어떻게 다 갚으려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정부와 여당은 국가채무 현황을 다시 한번 찬찬히 들여다보고 그 상환계획을
따져보기 바란다.

미국의 경우 지난 69년부터 시작된 적자재정이 30년만인 98년에야 가까스로
흑자로 돌아섰고, 일본은 지난 70년부터, 영국은 지난 90년 이후 적자재정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적자재정을 다시 흑자로 반전시키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사례다.

기업의 부채비율 축소를 강조하는 정부가 나라 빚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처럼 대범한지 이해하기 어렵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