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분 < 방송 작가 >

시원시원한 외모만큼이나 솔직했다.

몇 달전에 박지은 선수를 인터뷰한 일이 있었다.

프로가 돼서 처음받은 상금으로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을 했다.

당연히 "부모님께 드렸어요"라는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솔직히 말해도 되죠? 저 그 돈으로 전부 쇼핑했어요"

또 오랜만에 한국에 와서 뭐가 가장 인상적이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친구들하고 테크노댄스 춘거요"라며 직접 테크노
댄스까지 보여주기도 했다.

그 솔직함에 당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척 명쾌하고 또 매력적이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사람은 솔직하고 당당해질 수 있나보다.

필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박지은 선수는 티샷을 한 후 망설임없이 티를 뽑아들었고, 자신감에
이글이글 타는 눈으로 퍼팅라인을 쟀다.

잘하겠다는 마음이 그대로 그 큰 눈, 코, 입에 실려 있었다.

스스로를 못믿는 내 모습과는 너무도 비교되었다.

나는 어떤가?티샷을 한 후에는 볼이 잘못갈까 싶어 입으로 손가락이 먼저
간다.

그린에서는 설마 "내가 넣을 수 있을까?"싶어 불안하게 눈동자가 떨린다.

더 솔직히 말하면 그런 표정을 미리 지음으로써 앞으로 일어날 사태를
조금이라도 무마하려는 것이었다.

또 그런 자신없음을 표현하면서 라이벌을 안도하게 만들려는 영악함도 약간
깔려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표정부터 자신없는데,볼인들 제대로 갈리 없다.

그렇게 친 샷은 늘 미스샷이나 홀을 비켜나기 일쑤였다.

올해에는 나도 변해야겠다.

솔직해져야겠다.

마음은 잘하고 싶은데, 밖으로 표출되는 모습은 미리 실수를 대비해서
자신없는 모습으로 둔갑해 있을 필요가 없다.

마음이 그러하다면 티샷을 한후 거침없이 티를 뽑아들고, 그린에서는
"반드시 넣는다"는 생각으로 홀을 노려봐야겠다.

형식이 내용을 규제한다는 면에서 볼때,나의 이 비장한 표정이 샷의 질도
바꿔놓을 수 있을 것이다.

승부를 노리는 내 마음이, 비록 라이벌 K언니에게 노출되더라도 말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