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 미국 MIT대 교수 >

지난 주말 보스턴에서 미국경제협회(AEA)연례회의가 있었다.

이 회의는 명목상으로는 대학 교수(경제학자)들의 평범한 모임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이들의 모임이기도 했다.

과거 경제학자들은 결코 직접적으로 정책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득세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최근 일부 경제학자들은 엄청난 힘을 휘두르는 세력으로 부상했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이들 학자출신 세력가의 수가 부쩍 늘어났다.

학자에서 정책결정자로 변신한 가장 대표적인 예는 "학계의 신동"으로
촉망받다 미국 재무장관으로 등극한 로렌스 서머스이다.

물론 서머스 재무장관처럼 하버드대 교수 출신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고위 관직에 오른 예는 이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교수 출신으로 정책결정자가 된 수많은 케이스 가운데서도
서머스가 가장 부각된 인물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설사 1년 뒤에 서머스가 재무장관직에서 물러난다 하더라도 걱정할게 없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주요기구들에는 그를 대체할 만한 전직 교수 출신들이
넘치도록 많다.

학자들이 이처럼 권력의 대열에 들어서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한가지 이유로는 일부 명문대 교수들이 지난 1990년대 효율적으로 경제
난관을 극복해 내는데 일조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1980년대부터 좌파와 우파 양쪽에서 터져 나온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들을 효과적으로 잠재운 것이다.

우파 진영에서 불거져 나온 도전은 상당히 강도높은 것이었다.

이들은 "높은 세금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며 기존 경제학자들을 조롱했고
"예산적자" 같은 사안들을 무시했다.

이들은 월스트리트저널과 포브스 등 유력 언론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는데는 지장이 없었다.

결국 이들은 우파 진영의 사도였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시절의 경제
성장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논리를 합리화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8년 뒤 반레이건주의가 팽창하게 되자 이들 우파의 주장은
역시 "괴짜들의 빈약한 논리"로 몰리게 됐다.

물론 20여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들의 주장이 완전히 힘을 잃은 것은
아니다.

자고로 부유하고 늙은 계층의 편견에 구미가 맞는 이론은 최소한의 재정적인
지원은 얻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이론을 옹호하는 이들은 우파 세계에서는 명목뿐인 자리라도
언제나 얻을 수 있다.

좌파의 주장은 그나마 온건한 편이었다.

비록 재정적인 뒷받침은 부족했지만 말이다.

"애틀랜틱 먼슬리(Atlantic Monthly)"와 같은 지식인들의 잡지에는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정부주도형 경제성장이 자유시장경제의 논리에
어긋난다는 주장을 솔직담백하게 담은 글이 실렸다.

좌파 경제학자들은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의 높은 성장수치 등에 현혹된
나머지 이같은 주장에 반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1990년대 초반에 윌리엄 제퍼슨 클린턴을 포함한 많은 통찰력
있는 경제학자들은 이같은 의견이 충분히 논리 정연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자 일본 경제는 중심을 못잡고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몇년 뒤엔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크나큰 경제위기에 봉착했다.

따라서 "아시아 시스템의 우월성"을 소리높여 외쳤던 좌파 경제학자들의
주장은 수그러들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하면 최근 몇년 사이에 전통 경제학자들은 그들 논리의 정당성을
다시 입증받게 됐다.

비록 약간 부정적인 형태이긴 하지만 말이다.

즉 "비판받았던 만큼은 어리석지 않았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학자들이 권력을 잡게 된 데는 또다른 배경이 있다.

이는 다분히 사회적인 추세에 따른 것이다.

나는 이것을 "책벌레들의 승리"라고 부르겠다.

옛날에는 너무 똑똑한 사람은 중요한 자리를 맡아서는 안된다는 일종의
원칙 같은 것이었다.

예를 들어 서머스 재무장관이나 스탠리 피셔 IMF 부총재와같이 이론적이고
기술적인 화려함이 돋보이는 사람들은 그 뛰어남 자체로 이미 뭔가 점수를
잃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지난 1990년대에는 머리가 좋은 인물들이 정부나 기업 등에서
압도적이라 할 만큼 두드러진 성과를 나타냈다.

그리고 이것이 전반적인 사회 인식을 바꾸게 됐다.

빌 게이츠와 같이 튀는 인물이 최고봉이 될 수 있는 세상이 됐다는 것은
서머스 같은 인물이 재무장관이 될 수 있는 세상이 됐다는 것과 일맥상통
한다.

그러나 아직도 사람들은 학계 인물이 정책결정자가 되는 현상이 일시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경제학이란 본래 만인이 각자 나름대로의 의견을 갖고 있는 분야다.

따라서 대중들이 지속적으로 경제학자들의 의견에 의지하고 따를 것이란
보장은 없다.

그들이 아무리 뛰어난 석학들이라 할지라도.

< 정리 =고성연 기자 amazingk@ked.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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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폴 크루그먼 미 MIT대 교수가 최근 뉴욕타임스 기고문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