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천년 첫 일출 기즈번 ]

바람은 잠잠했다.

바다 물결도 약했다.

바람과 바다와 사람이 하나가 돼 "그"를 기다렸다.

2000년 1월 1일 새벽 5시41분(한국시각 1일 오전 1시41분), 뉴질랜드
동부해안의 와이누이 해변.

기스본에서 북쪽으로 약 10km 떨어진 이 해변에서 새 천년의 첫 태양이
머리를 내밀었다.

태양이 완전한 모습이 드러낸 것은 5시 43분.

첫 태양이 그 자신만큼 자라는데 꼭 2분이 걸렸다.

어제도 떠오른 태양이지만 오늘은 유난히도 더 크고 밝았다.

<>.인종과 피부색깔 국적이 제 각각인 수천 사람들의 입에서는 새 태양이
모습을 나타내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탄성이 흘러 나왔다.

"The first Sun on the Earth!"

한국말도 들렸다.

"와, 밀레니엄 태양이다!"

한솔그룹이 파견한 "밀레니엄 희망 조림단"에 속한 서울의 한 젊은 대학생
이었다.

마오리족 원주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오리 청년들은 붉은 창으로 하늘을 찌르고 발로 바닥을 쳤다.

처녀들은 새해맞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처녀들의 노래는 청년들의 함성을 밀어냈다.

밀레니엄 희망 조림단의 한국인들도 가세했다.

방패연을 하늘로 높이 띄우고 해뜨는 순간에 맞춰 일제히 촛불을 밝혔다.

바다가 붉게 물들었다.

바다위의 돛배들은 긴 그림자를 만들었다.

새 밀레니엄의 첫 햇살은 이렇게 지구의 동쪽끝을 맨 먼저 찾아 왔다.

이곳 저곳에서 카메라 셔터소리가 요란했다.

첫 태양 첫 햇살을 영원히 간직하려는 바램으로...

태양은 이곳 태평양에서 솟아난 즉시 서행길에 올랐다.

6시간 후면 한반도(일출시각 7시40분께)에도 첫 햇살을 쏟을 것이다.

<>.기즈본시의 뉴밀레니엄 행사는 31일 자정무렵에 절정을 이뤘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은 시청앞 광장앞에 설치한 밀레니엄
시계탑을 수십겹으로 에워쌌다.

31일 밤 11시59분50초부터 존 클락 기스본 시장의 선창으로 역사적인
뉴밀레니엄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3개의 시계 바늘이 하나로 포개져 2000년 1월1일 0시를 가리키자 수천발의
폭죽이 하늘로 솟아 올랐다.

사람들은 서로를 얼싸 안았고 광장에 모인 2만여명의 인파는 한목소리로
"헬로우 뉴밀레니엄"을 외쳤다.

<>.시계탑 행사가 끝나자 인파는 새해(태양)맞이 행사가 펼쳐지는
"미드웨이 비치"로 향했다.

백사장은 이미 전날 저녁부터 진을 치고 있는 10만여명의 인파로 가득 찼다.

백사장 한쪽에 설치된 무대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새해를 맞이하고 묵은 해를
보내는 음악을 만들어 냈다.

미드웨이비치 앞바다는 뉴질랜드 전역에서 모여든 요트로 뒤덮였다.

요트의 나라 뉴질랜드에 있는 거의 모든 요트들이 모두 이 곳에 모여 있는
듯했다.

요트들은 31일 오후 늦게부터 이 해안가로 속속 입성했다.

특히 뉴질랜드 남섬에 위치한 수도 웰링턴에서 온 8백여척의 "웰링턴 축하
사절단"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돛에는 영어로 웰링턴이라는 단어가 쓰여 있었다.

일부 요트들은 새해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보기 위해 먼바다로 나갔다.

<>.인구 3만명의 아름다운 해안도시 기스본은 미국 영국 일본 호주 등에서
찾아온 진객들을 모두 소화하기에는 숙박시설이 역부족이었다.

이에따라 해안은 거대한 텐트촌을 이뤘다.

가족과 친구단위로 기스본을 찾아온 사람들은 텐트에서 낮과 밤을 보냈다.

해안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한 일부는 시청공원에 텐트를 쳤다.

<>.밀레니엄 맞이 축제로 온 시내가 흥분과 환희에 휩싸인 기즈본시에게
Y2K는 먼나라 이야기였다.

시인과 관광객들은 새 역사가 창조되는 현장에 있다는 기쁨에 젖어 Y2K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영국에서 밀레니엄 태양을 12시간 먼저 보기위해 기즈본에 왔다는 에딘
스미스(28세)라는 청년은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영원히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2000년에는 뭔가 새롭고 행복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고 그는 말했다.

<>.31일밤과 1일 새벽 뉴질랜드 전역에서는 1만여톤의 폭죽이 하늘을
수놓았다.

뉴질랜드의 1년치 사용 분이 이날 하루에 걸쳐 다 소진됐다.

뉴질랜드 최대의 도시인 오클랜드에서는 1일 새벽까지 하룻밤 동안 수천톤
이 사용됐다.

<>.기즈본 시민들은 밀레니엄 첫해를 보지 못할까봐 가슴을 졸였다.

지난해 23일부터 뉴질랜드 동부해안에 폭풍이 일면서 짙은 구름과 함께
비를 뿌리는 날씨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29일 오후부터 날씨가 개자 새 태양을 볼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에
들떴다.

기즈본시 당국은 지난 며칠간 해안으로 밀려온 쓰레기와 통나무 등을
하루에 두차례씩 청소, 새해 맞이 새 길을 닦기도했다.

< 기즈본(뉴질랜드)=이정훈 특파원 leehoon@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