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지배구조개선은 올해 재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를 대표하는 단체들은 사외이사 감사위원회
집중투표제 등을 놓고 공청회 등에서 정부및 시민단체와 격론을 벌였다.

기업의 오너와 직접 관계가 있는 사안이었기에 재계가 느끼는 위기감은
어느때보다도 컸다.

재벌 총수의 독단적 경영을 막기 위해서는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해야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었다.

시민단체의 지원사격도 한몫 했다.

그러나 재계는 이사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사외이사들이 책임있는 결정을
유보하거나 사외이사와 경영진 간에 불화를 빚을 경우 기업지배구조가 왜곡될
수 있다고 반발했다.

현재 기업지배구조 방안을 담은 증권거래법 개정안과 상법 개정안은 국회
의결절차를 밟고 있으며 연내 통과가 확실시된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상장 기업에선 사외이사와 감사위원회가 "막강 파워"를
지니게 된다.

내년부터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대규모 상장기업은 사외이사를 3명이상
둬야 한다.

2001년부터는 전체 이사의 절반을 사외이사로 채워야 한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증권사 등 제2금융권도 내년부터 3명이상의 사외이사
를 두되 사외이사의 비중은 전체 이사진의 절반 이상이어야 한다.

감사위원회 설치도 의무조항이다.

이렇게 되면 이사회는 대주주의 경영을 꼬치꼬치 간섭할 가장 두려운 존재가
된다.

감사기구의 역할도 강화된다.

이같은 내용은 재정경제부가 지난 10월20일 기업지배구조개선위원회(위원장
김재철 무역협회장)의 초안을 기초로 법제화한 것.

이에 앞서 민간자율기구로 지난 3월 설립된 기업지배구조개선위원회는
지난 8월26일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 초안을 내놓아 기업지배구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기업지배구조는 재벌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5%에 불과한 지분을 가진 대주주들이 95% 주주들의 이익에 반해 사익을
추구할 수 있었던 건 기업지배구조와 관련한 제도가 미비했기 때문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었다.

투명하고 선진화된 기업지배구조를 통해 소액주주가 제몫을 찾고 외자도
유치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두겠다는 것이 정부의 복안이었다.

이에 대해 재계의 입장은 다르다.

이사회와 경영진이 이원화된 기업지배구조하에서는 이들간에 불협화음이
생기면 큰 문제라고 재계는 주장했다.

이사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사외이사들이 사사건건 경영진의 경영에
간섭하면 시급히 결정해야 할 사항이 지체될 수 있다고 대기업들은 지적했다.

기업지배구조를 놓고 해외에서도 논란이 벌어졌다.

최근 필리핀에서 열린 ADB(아시아개발은행) 주관 아시아 기업지배구조워크숍
에서 일본 도쿄대학 간다 교수는 "필리핀 인도 말레이시아 등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IMF체제에서 제외된 사실이 반증하듯 지배구조와 외환위기는 직접적
인 상관관계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시아 외환위기는 잘못된 기업지배구조보다는 <>국내 자본시장의
미발달 <>불충분한 외환보유고 <>경상수지 적자 <>외환통제 시스템의 미비
상태에서 섣불리 외환자유화를 받아들인데 기인했다고 분석했다.

전경련 김석중 조사1본부장도 "나라마다 경제.사회환경의 차이가 커
기업지배구조의 모범답안은 없다"며 "다수의 소액주주에게 주식이 분산된
미국과 달리 유럽처럼 소수 대주주에 의해 소유된 아시아 기업들에 미국식
지배구조를 강요하는 건 무리"라고 지적했다.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목적은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자는
것.

기업지배구조를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성패가 갈릴 수 있다는
점에서 내년에도 기업지배구조는 재계의 핫 이슈가 될 전망이다.

< 정구학 기자 cg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