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시장의 뿌리는 누가 뭐래도 옷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옷모양(패턴)을 뜨는 패턴사, 원단을 자르는 재단사, 자른 옷감을 재봉틀로
박아 옷을 만드는 재봉사와 보조원...

동대문 의류상가에 걸린 옷에는 이들의 땀이 구석구석 배어 있다.

이들은 지금은 먼지 나는 공장에서 일하지만 자신의 공장을 차려 독립
하거나 상인으로 나설 날을 꿈꾸기도 한다.

서울 종로구 충신동에 있는 한 봉제공장의 패턴실장 김광수(30)씨.

올해로 경력이 10년째 되는 베테랑이다.

김씨는 공고를 졸업한 뒤 중장비기사로 일하다 봉제공장에 들어왔다.

지금은 패턴실장으로 공장 인력을 관리하는 일까지 맡고 있다.

그는 기회가 주어지면 봉제공장을 하나 차리겠다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봉제사 정귀자(29)씨.

경력이 10년이나 되지만 일손이 달리면 요즘도 보조원이 거들어야 할
일까지 도맡는다.

정씨는 결혼하고 나면 재봉틀을 떠나고 싶다.

하지만 막상 그때가 되면 다시 재봉틀에 앉게 될 것 같다는게 그의 고백
이다.

동대문시장에 옷을 납품하는 봉제공장은 만리동 회현동 신당동 창신동 등
서울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규모는 가내수공업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대여섯평 공간에 재봉틀 서너대 들여 놓고 예닐곱명이 일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봉제공장은 상인이 직접 운영하는 직영공장과 하청을 받아 옷을 만드는
하청공장이 있다.

동대문 상인들은 동대문을 근거지로 시장옷을 만들며 사는 사람이 서울
에만도 얼추잡아 1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봉제공장들의 가장 큰 고민은 일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봉제공 인건비는 최근 10년새 3배로 뛰어 왠만큼 일이 손에 익은 사람
이라면 월 1백50만원 정도를 받는다.

그런데도 일하겠다는 젊은 인력들이 부족해 외국인을 쓰기도 하고 중국에서
만들어 가져 오기도 한다.

"객공"이라고 불리는 프리랜서 봉제공들이 각광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에 사는 주부 김경미(31)씨.

김씨는 요즘 오전 9시부터 오후 11시까지 14시간을 중구 신당동에 있는
한 봉제공장에서 보낸다.

이 공장에서 일하긴 하지만 상용직은 아니다.

계약에 따라 옷 한벌당 일정금액을 받고 일하는 이른바 "객공"이다.

김씨가 일하는 공장은 팀204 밀리오레 등 동대문 대형상가에서 판매할
여성복을 하청받아 만든다.

이곳에서 일하는 봉제사와 보조원 8명은 모두 "객공"이다.

대부분 결혼한뒤 재봉틀을 떠났다가 프리랜서로 나선 주부들이다.

이들의 작업시간은 일정하지 않다.

일감이 많을 때는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고 급할 때는 밤샘하기 일쑤다.

반면 일감이 없을 때는 한참동안 집에서 쉬기도 한다.

객공중에는 집에서 일하는 재택근무자도 적지 않다.

객공들은 일감이 많을 때는 상용직의 2~3배의 임금을 받는다.

요즘에는 봉제사급 객공이라면 최소한 월 3백만원은 번다.

최근 "객공"이 뜨면서 봉제공들에겐 희망이 생겼다.

결혼하고 아이들이 성장한 뒤엔 부업 삼아 "객공"으로 일할 수 있기 때문
이다.

남편과 함께 맞벌이 할 경우 "객공" 생활 5년이면 집 한채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봉제공장 근로자나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사장들중엔 자신이 만든 옷을
직접 팔기 위해 상인으로 나선 경우도 많다.

물론 경험 부족으로 돈만 날린 사람들도 허다하다.

그러나 몇차례 좌절을 경험한뒤 상인으로 변신하는데 성공한 이도 있다.

이들이야말로 봉제공장 사람들의 우상이다.

< 김광현 기자 khkim@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