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농경문화는 대략 기원전 10세기께 시작되는 청동기시대에 시작된다.

그 시기에 이미 쌀이 재배되고 있었다는 것은 유적지에서 나온 탄화된
쌀이나 벼의 탄소동위원소 연대추정 및 토기편에 찍혀 있는 벼의 흔적이
입증해 주고 있다.

해방전부터 지금까지 전국 20여곳의 발굴현장에서 탄화미와 벼가 출토돼씨만
그 시대에 관연 어떤 경작법을 써서 쌀을 생산했는지는 베일에 가려져 왔다.

그런데 최근 선사시대의 쌀재방법을 구명해내려는 고고학자들의 오랜 꿈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지난 4월1일 경남 울산 무거동 옥현 유적지에서 사상처음 기원전 7세기
청동기시대의 논들이 발굴된데이어 또 최근에는 충남 논산 마전리유적에서
웅덩이 수로등 관개시설까지 갖춘 5세기께 계단식 논이 그대로 발굴됐다.

특히 마전리 유적에서는 인근에서 주거지는 물론 무덤 40기까지 함께 밝굴돼
농경수준은 물론 2백평의 좁은 공간에 주거 생산공간 무덤이 복합된 집약적
유적으로 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중국에서는 아직 논 유적이 확인되지 않았다.

일본의 경우 규수의 나바다케, 이타즈케유적, 오사카의 이케시마 유적 등
여러곳에서 논유적이 발굴됐지만 기원전 4~5세기를 넘지 못하는 유적들이다.

앞으로 연구결과에 따라서는 남방위나 중국에서 쌀이 전파됐다고 주장하고
있는 일본고대 농사경로가 한반도로 뒤바뀔 수도 있다.

옥현.마전리 두 논 유적은 수준높았던 농업기술발달사는 물론 청동기인의
생활상까지 알수 있는 귀중한 유적이다.

우리 발굴이란 것이 그렇지만 옥현유적은 주택공사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행한 긴급구제발굴이었다.

이번 마전리 역시 고속도로 건설구간에서 이루어졌다.

때문에 정책당국이 자칫잘못하면 중요한 유적이 순간에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다행스럽게 옥현유적의 청동기마을 주거지는 아파트공원에 전시관을 지어
일부만 이전복원하고 수전지역은 흙으로 덮은뒤 그위에 어린이 놀이터를
만들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마전리 유적은 어떻게 처리할지 모르겠다.

아무리 중요한 도로공사라 해도 정부가 스스로 문화유적을 파괴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