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학길 < 서울대 교수 / 경제학 >

지난 7월 표면화되기 시작한 대우사태 문제가 마지막 초읽기에 접어들고
있다.

한보 기아사태가 IMF 구제금융으로 치닫고 말았던 꼭 2년전의 일을 상기할
때 정부와 금융업계 전체가 "11월 금융대란설"의 회오리에 묻히고 있는 현
사태를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기업구조조정위원회와 채권단은 오는 11월2일까지 대우 12개 계열사에 대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계획을 모두 확정짓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대우채권 환매 비율이 80%로 높아지는 11월10일 이전에 대우 워크아웃
방안이 확정되면 금융시장 불안 요인이 사라질 것이라는 게 정부의 희망
사항이다.

최근 "저금리-재정확대-경기부양"이라는 재경부 중심의 정책기조를 놓고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은 인플레 압력을 염려하여 긴축기조를
유지하자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정책운용기조의 논의조차 대우사태라는 커다란 눈사태 속에 묻혀
버리고만 느낌이다.

오히려 대우사태의 진전양태에 따라 내년도 경제정책운용의 기조가 크게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28일 일본 도쿄에서는 2백여개 해외 채권금융기관들이 참석하는 전체
회의가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해외 채권단은 정부 또는 국내 채권단에 대우채무의 지급보증을 요구하고
나올 것이 뻔하다.

결국 한국경제는 정부의 홍보내용과는 달리 아직도 IMF위기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우사태는 이미 시장에 맡겨두어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지났다.

환란 이후 62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금융산업 구조조정비용으로
부담하고 있는 일반 국민의 눈에는 이번 사태 역시 대우 경영진들이 주연이었
던 "부실기업 인수를 통한 부실화의 게임"에 정부와 금융권이 조연을 담당한
것으로밖에 비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의 거듭된 금융 시장 안정 정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시장 불안 요인이
안정되기는 커녕 증폭되고 있는 이유는 11월2일부터가 대우 사태의 완결이
아니라 본격적인 시작이며 과연 제2,제3의 대우는 없는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필자가 이 다산칼럼(98년 6월 15일자)에서 이미 지적하고 예견한 대로 대우
사태가 지금과 같이 확대된 이유는 빅딜 정책의 무리한 추진 때문이었다.

만일 빅딜이라는 허상에 쫓겨다님이 없이 IMF 관리체제 이후 도산되거나
워크 아웃에 들어간 여러 기업들처럼 대우 스스로가 문제를 인식하고 계열사
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면 지금과 같은 사태로까지 발전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정부는 대우 문제를 시장에 맡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외국
금융기관의 대우 부채를 전부 보증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져있는 것이다.

정부는 다음달 6일쯤 대우 12개 계열사의 중간실사가 끝나 대우채권의
가치와 손실이 추정되면 곧바로 투신 정상화작업에 돌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대우 채권 손실 분담의 원칙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밝혀진 숫자이기는 하지만
지난 6월 말 현재 각 투신사의 자기자본 현황은 IMF 이후에도 대규모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현상이 진행돼 왔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이유는 5개 은행 및 재벌.증권사 계열의 투신사들의 99년 6월말 현재
자기자본 합계가 7천6백9억원인데 반해 사실상 정부의 기업인 한국투자신탁과
대한투자신탁의 자기자본 합계액은 마이너스 1조8천8백억원에 육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신권 수익증권에 편입된 대우 무보증 회사채 및 CP(기업어음)가 19조원에
달한다는 것과 대우 계열사들의 부실규모가 부실채권의 20~50%로 추계된다고
보고된 바 있다.

지난 7월22일 채권단에서 지원한 4조원을 훨씬 초과하는 공적자금 투입
없이는 대우사태가 해결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금감위와 재경부 등 정책당국은 무엇을 해야하는가.

우선 한국투자신탁.대한투자신탁에 대한 투신사 구조조정을 싯가평가제
유보라는 형태로 지연시킬 것이 아니라 공적자금 투입과 동시에 진행시켜야
한다.

바로 이러한 신속하고 확고한 조치만이 국내외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해외 채권단에 대해서도 국내 증권사 투신사에 적용한 것과 동일한
손실분담원칙을 적용해야 하며 정부 또는 국내 채권단의 지급보증 요구를
명백히 거절해야 한다.

셋째 대우 계열사의 경영권 문제는 워크아웃 여부에 따라 각각 채권단과
현 경영진에 귀속되는 식으로 갈라질 수밖에 없겠지만 후자에 의한 기업개선
의 기회는 이미 상실됐다고 판단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