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Economist - 본사독점전재 ]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은 올들어 열린 각종 회의에서 국제금융체제의
안정을 위한 대안을 제대로 내놓지 못했다.

2년전 아시아등지의 금융위기 이후 경제개혁이 시급하다는 점에서는 의견
일치를 봤지만 정작 위기방지책에 대해서는 견해가 분분하다.

세계경제가 최악의 국면에서 벗어났다 하더라도 금융불안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위기가 다시 닥쳐올 수도 있다.

이런 와중에 IMF 무용론과 새로운 다자간 기구의 창설안등이 제시되고 있다.

물론 원칙만 그럴듯하고 실행하기는 어려운 제안들을 쏟아놓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국제경제연구소(IIE)가 내놓은 "국제금융
시스템의 안전한 발전"이라는 보고서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29명의 전문가 그룹은 프레드 버그스텐, 배리
아이헨그린, 마틴 펠드스타인, 모리스 골드스타인, 폴 크루그먼, 조지
소로스, 폴 볼커 등 저명인사들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보고서에서 금융체제 안정을 위한 몇가지 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 각국이 올바른 정책을 선택하도록 인센티브를 높이자는 것이다.

IMF의 차관을 받는 국가들이 위기방지를 위한 노력 여하에 따라 대출이자에
차등을 두는 것이다.

둘째, 금융시스템이 불안한 국가로 유입되는 단기자본에 보유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리에 유입자금의 일부를 의무적으로 예치토록 할 경우 단기자금의 급격한
유출입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민간부문의 책임분담이다.

특히 G7국가에서 발행되고 유통되는 모든 국채에 대해 집단행동조항
(collective-action clause)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넷째, 고정환율제도를 버리고 변동환율제를 채택토록 하는 것이다.

특히 달러.엔.유로화에 목표환율대를 설정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변동환율이 환투기꾼의 공격을 막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다섯째, IMF의 차관제공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이다.

정책운용의 실패등에 따른 개별국가의 경제위기와 금융제도등 시스템상의
경제위기를 구별해 차관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IMF와 세계은행의 역할분담을 확실히 해야 한다.

IMF는 거시정책에 초점을 맞추고 세계은행은 장기적인 경제발전을 위한
구조적 측면에서의 지원에 주안점을 둘 필요가 있다.

일곱째, 각국 재무장관들이 국제회의를 소집해 빈국의 개혁을 돕는 것이다.

전문가 그룹이 제시한 이 방안들은 그동안 G7이 심사숙고해온 대책보다
훨씬 다양하고 강도 높은 것이다.

예컨대 금융시스템이 취약한 국가에 유입되는 단기자본에 대해 전문가
그룹은 보유세 부과를 적극 권고하고 있는 반면 G7은 이에 소극적이다.

국채에 대한 집단행동조항 신설요구도 G7이 난색을 표명해온 이슈다.

G7은 이같은 조항의 신설이 국채의 가치논쟁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 그룹과 G7의 가장 큰 시각차는 바로 IMF의 차관에 대한 입장차이다.

현재 IMF 차관을 둘러싼 문제의 핵심은 바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에
관한 것이다.

IMF의 구제금융을 지원받는 나라는 그에 따른 대가인 IMF의 정책요구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반면 이런 점 때문에 금융위기에 처한 국가를 지원하지 않았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파장도 무시할 수 없다.

IMF나 세계은행이 처해 있는 딜레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G7은 IMF를 통한 문제해결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문가 그룹은 정상적인 환경에서 소규모의 구제금융은 일정한 조건 아래
제공할 것을 촉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국가들이 굳이 위기방지 체제를 갖추려 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차관제공조건을 붙여야 개도국들이 국가위기가 바로 자국의 문제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 그룹은 그러나 위기가 주변 국가로 파급되는 이른바 시스템의 위기일
경우 각국이 분담하는 새로운 지원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현재 IMF의 보완준비자금(SRF)이나 긴급융자제도(CCL)보다 개별 정부가
일종의 보험금 형식으로 출연한 재원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 IMF의 대출체계보다 훨씬 신속하고 효과적일 수 있다.

개별 정부가 돈을 대는 것이어서 공동대처가 훨씬 용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위기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자금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 것도 IMF등 국제기구에만 문제해결을 맡길 수 없는 이유다.

이러한 조치는 IMF등 국제기구의 차관에 대한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데
기존 방식보다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시스템위기를 국가위기와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이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명확한 구분잣대를 설정할 경우 도덕적 해이의 딜레마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10월9일자 >

< 정리=박영태 기자 py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