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비가 오려나
호지 일모

먼 산자락 넘어
구름은 가고

정은 만 리
청노새 울음

호지 일모에
눈비 오려나

저녁 바람 분다
빈 들에 홀로

이형기(1933~) 시집 ''적막강산''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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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걷이도 끝난 들판에 나와 서서 지는 저녁 해를 보고 있는데 찬바람이
옷속으로 스민다고 치자.

멀지 않아 눈비도 오겠지.

사랑하는 사람은 멀리 있고, 문득 외롭고 쓸쓸해지면서 가없이 넓은 만주땅
(호지) 한 끝에 홀로 버려진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이어 지평선에 검은 실루엣으로 달려가는 청노새와 고량을 베어낸 들판 저
멀리서 몰려오는 눈비가 떠오르리라.

"호지"와 "일모"라는 한자어가 아주 적절하게 쓰인 점도 눈여겨 보자.

신경림 시인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