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조사 결과는 성역으로 여겨졌던 그룹총수의 탈세를 정면으로
파헤쳤다는 점에서 "국세청 세무조사 역사를 다시 썼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세액 추징규모도 웬만한 대기업의 한해 매출액과 맞먹을 정도로 엄청났다.

탈세규모가 너무 크면 적당한 선에서 조정했던 과거의 관행에서 완전히
탈피했다는 평이다.

이번 조사가 "재벌길들이기" 또는 "재벌개혁 압박" 차원인지, 아니면
국세청이 최근 선언한 "정도세정"을 순수하게 실천한 것인지는 아직 판단
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이 어떤 의미이건 간에 재벌그룹에 대한 "성역없고
제한없는" 조사가 최소한 당분간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 추징규모 사상 최고 =추징세액이 무려 5천4백억원이다.

이중 그룹계열사가 내야할 세금이 4천8백억원이고 조중훈 명예회장 조양호
회장 등 기업주가 개인돈으로 납부해야할 세금이 6백59억원.

그룹과 개인 모두 역대 세무조사 추징세액중 최대규모다.

이제까지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고 1천억원 이상을 추징당한 곳은 현대그룹
하나뿐이었다.

현대는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93년 특별세무조사를 받고 1천3백여억원을
추징당했다.

그러나 정치보복 성격이 짙었던 이 조사는 법원에서 모두 무효화됐다.

현대그룹을 제외하면 93년 2월 조사를 받은 포항제철이 7백65억원으로 가장
많은 세금을 추징당했다.

93년 6월엔 카지노업계 대부 전낙원씨가 운영하던 파라다이스그룹이
4백59억원을 추징당해 뒤를 이었다.

이밖에 현대상선이 91년 12월 2백71억원을, 최근 조사가 끝난 보광그룹이
2백62억원을 부과받았다.

작년에 조사받은 고려통상은 1백32억원, 미도파는 56억원 등이었다.

<> 성역이 무너졌다 =권력기관의 사정활동에서 그룹총수는 언제나 예외였다.

그렇게 해야 국가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게 지금까지 공무원들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던 의식이다.

국세청도 마찬가지였다.

규모가 큰 그룹일 경우엔 무조건, 중견그룹이면 특별히 사회적 지탄을
받거나 정치보복적 동기가 있어야만 오너를 전면 조사했다.

대기업의 국제거래도 그동안 국세청이 건드리지 못했던 분야.

거래구조가 복잡한데다 증거확보도 어려워 감히 조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국제거래를 조사하면 "외화획득"을 하는 데 어려움이 생긴다는 논리도 큰
이유중 하나였다.

이번 조사는 재벌총수의 탈세,그것도 국제거래 과정에서의 자금유출을
문제삼음으로써 두개의 성역을 모두 깨뜨려버렸다.

이제 관심의 촛점은 이것이 일회성으로 그칠 것인지, 아니면 이번을 계기로
재벌총수와 국제거래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가 진행될 것인지 여부다.

<> 다른 그룹으로 확산가능성 =국세청은 올초 음성탈루소득 조사결과를
공개하면서 "앞으로 국제거래를 통한 불법적인 외화유출과 탈세를 집중
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세청이 국제거래를 조사하겠다고 밝힌 것은 개청이래 이 때가 처음이었다.

또 안정남 국세청장은 지난 9월 기자간담회에서 "사회지도층의 납세도의를
철저히 검증하겠다"며 재벌총수 및 2세에 대한 조사를 강화할 뜻을 비쳤다.

국세청은 이후 국제조세국 소속이었던 국제조사과를 조사국 산하로 옮겨
조사전담부서로 전환시켰다.

담당직원도 대폭 늘렸고 이들에 대한 전문교육도 강화했다.

많은 조사국 관계자들은 "국제거래 조사에 대한 상층부의 의지가 매우
강하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최근엔 보광그룹 대주주이자 중앙일간지 사장인 홍석현씨를 조세
포탈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2백62억원을 추징했다.

이번엔 재계 6위의 그룹인 한진그룹 총수일가와 국적항공사인 대한항공에
5천억원이 넘는 세금을 추징했다.

이런 일련의 행보는 한진에 이어 다른 그룹도 "성역없는 조사"의 대상이
될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국세청이 정도세정이라는 원칙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
했다고 보면 된다"며 "조만간 다른 그룹도 한진처럼 전면적인 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김인식 기자 sskiss@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