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식 < 과학문화연 소장 >

수사기관의 도청및 감청에 따른 통신 사생활(프라이버시) 침해의혹으로
나라안팎이 시끄럽다.

한국과 유럽에서 도.감청을 놓고 관련기관과 이해당사자간에 주고받는
입씨름은 정보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국민 여러분, 안심하고 통화하십시오"

얼마전 정보통신부 국가정보원 등이 종합일간지에 낸 광고 제목이다.

그럼에도 언론과 야당은 정부의 해명을 곧이 곧대로 수용하지 않고 있어
불법적인 도청 및 감청 문제는 이번 국정감사에서 최대 이슈가 될 것 같다.

한편 유럽에서는 에셜런(Echelon)의 활동이 사회문제가 됐다.

에셜런은 미국 국가안전국(NSA)이 운영하는 전지구 정찰시스템이다.

5개의 정찰위성과 영국 독일 일본 호주 등 지구 곳곳에 설치된 청음 안테나
로 구성된다.

NSA는 직원 2만명에 20대의 슈퍼컴퓨터를 보유해 규모면에서는 미국 중앙
정보국(CIA)을 능가하지만 존재마저 확인되지 않을 정도로 비밀에 쌓인
첩보기관이다.

NSA는 1948년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맺은 비밀협정에 따라 에셜런을
만들었다.

에셜런은 전세계의 코민트(comint), 즉 전자통신정보를 수집해 분석한다.

이를테면 전화 팩시밀리 전자우편 등의 전파신호를 엿들어서 해독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이 금방 끊은 전화 내용도 이미 에셜런에 도청
됐는지 모른다.

이러한 추측이 결코 과장이 아닐 정도로 에셜런의 성능이 뛰어나므로 유럽
의회에서는 영국에 대해 다른 유럽연합 국가에 관한 정보를 에셜런에 공급
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에셜런의 주요 임무는 민간인의 테러음모 마약밀매 국제사회의 불안요소를
탐지하는데 있다.

그러나 NSA는 냉전이 끝나면서 존립의 새로운 명분을 찾기 위해 경제 정보를
수집하게 됐다.

이 정보가 미국 기업에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가령 유럽 의회는 미국 방산업체인 레이시온이 브라질에 레이더 14억달러
어치를 납품하는 계약에서 프랑스 회사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에셜런이
제공한 정보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 기업인들도 에셜런의 첩보능력을 염두에 둘 때가 된 것은 아닌지.

에셜런은 감시기술의 압권이다.

정보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감시 시스템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개발될 것이다.

예컨대 거리에서 행인들이 속삭이는 말을 녹음하는 마이크로폰, 창문유리의
진동으로 방안의 은밀한 대화를 엿듣는 장치들이 나타날 것같다.

감시 시스템의 목적은 사회와 개인의 안전확보에 있다.

그러나 감시기술은 본질적으로 사생활의 희생을 요구한다.

가령 대도시의 거리에 설치된 비디오 카메라는 범죄용의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도 감시하게 된다.

그러나 어느 누가 사생활을 침해당한다는 이유만으로 범인을 잡아주는
장치의 철거를 요구하겠는가.

정보기술의 발달에 따라 프라이버시 침해는 불가피한 것같다.

어느날 우편함에서 발견되는 낯선 부동산회사의 투자권유 안내문, 가족관계
를 줄줄이 읊어대면서 보험가입을 간청하는 낯선 여인의 전화를 받고 놀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적지않을 터이다.

그들은 정보기술을 활용해 고객의 정보가 수록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놓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여러분에게 접근할 수 있다.

그들이 보유한 정보는 대부분 여러분이 사용하는 신용카드 전화 컴퓨터를
통해 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마디로 여러분 스스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뜻이다.

프라이버시 운동가들이 가급적이면 카드 대신 현금을 사용하고 설문지에
주소나 전화번호를 함부로 적어주지 말 것을 권유하는 이유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을 성 싶다.

정부기관에서 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한 자료가 저장된 데이터베이스를
갖고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처럼 정보사회에 진입할수록 프라이버시의 종말이 임박했음을 암시하는
여러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법률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사생활을 지켜낼 만한 수단이 많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2020년까지 보호받을만한 프라이버시가 조금도 남아있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산업사회는 개인의 익명성을 보장한다.

농업사회의 마을에서는 이웃 사이에 비밀이 없지만 산업사회의 도시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자유롭게 사생활을 만끽하는 공간을 허용한다.

그러나 정보사회에서는 거대한 감시체계 앞에서 모든 사람이 발가벗긴 채
누가 자신의 일을 눈여겨 보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숨막히는 삶을 살게 될 지
모를 일이다.

누가 정보사회를 유토피아라고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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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서울대 전자공학과
<>과학평론가
<>저서:제2의 창세기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