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사람이 나온다?"

무던히도 더웠던 이번 여름.

하지만 이 더위마저도 무색할 정도로 우리를 오싹하게 만들었던 영화가
있다.

"링"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염력자 대한 주위 사람들의 마녀사냥, 그 딸의 억울한 죽음으로 생긴
원한.

그 원한에 의한 연쇄적인 죽음.

이같은 스토리를 어두운 화면과 음침한 음향효과로 관객들을 공포에 떨게
한 영화다.

링은 공포영화치고는 그다지 사람을 놀래키는 장면이 드물다.

하지만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정말 놀랐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하나 있다.

그 장면은 바로 등장인물중 한 사람이 모든 일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하고
집에서 쉬고 있는 순간이다.

관객들조차 이 장면에서는 해피엔딩을 생각하며 자리를 뜰 준비를 한다.

그러나 갑자기 TV가 켜지고 TV안에는 우물이 보이고 우물밖으로 귀신이
기어나온다.

우물을 나온 귀신은 계속해서 등장인물을 향해 기어온다.

순간 놀라는 배우.

이 대목에서 관객들은 숨죽인다.

"설마 TV속 귀신이..."

하지만 관객들과 그 영화 속의 배우까지 경악시키는 것은 바로 그 귀신이
TV 바로 앞까지 온 후 TV 밖으로 기어나오는 장면이다.

어떤 관객은 이 장면을 보고 울기까지 했다고 한다.

왜 사람들이 경악을 했을까.

아마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진데 대해 놀랐던 것이 아닐까.

아마도 은연중에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TV는 그냥 보는 것", "그 안의 것은
그냥 화면에 영사되는 장면일 뿐"이라는 생각들이 각인돼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 그 생각을 뒤집어 보면 어떨까.

영화에서는 귀신이 나오지만 사람이 나온다고 생각을 해보자.

이런 생각은 상당히 황당해 보이지만, 그 전에도 이런 비슷한 아이디어가
등장한 영화들은 의외로 많았다.

첫번째로 기억나는 것은 몇해전 개봉해 영화팬들로부터 상당히 호평을 받은
"스타게이트"이다.

"스타게이트에 그런 장면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스타게이트에서는 분명히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은 바로 특수부대와 그 주인공이 스타게이트를 통해 다른 은하계로
이동하는 장면이다.

"워프"라고 불리는 기술을 사용해 사람을 어떤 특정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순식간에 옮기는 생각은 예전부터 사람들의 상상속에 있었다.

예전의 "스타트랙"이라는 영화에서는 사람이 우주선안에서 행성으로 이동할
때 역시 워프를 사용한다.

이같은 원리로 다른 장소에서 TV라는 매체를 사용해 TV가 있는 곳으로 이동
한다면 그것도 워프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워프라는 기술이 현실화된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이 이동할 때 차가 막혀서 약속에 늦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길에다 뿌리는 시간이 줄어들어 아마 좀더 시간을 잘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우주개발은 획기적으로 진척이 될 것이다.

그러나 기대하지 않았던 만남이 뜻밖의 좋은 만남이 되는, 그래서 왠지모를
기대를 하고 외출하게 되는 그런 사람냄새 풍기는 삶은 기대하기 힘들지
않을까.

< 이준구 한국과학기술원 영화동아리 은막회원 pania@ cais.kaist.ac.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