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은 대그룹 체질을 강화해 21세기 초우량 기업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자연스런 과정이다"(이선 산업연구원 원장)

"정부가 모범답안을 만들어 놓고 기업에 일방적으로 강요해선 안된다"
(송병락 서울대 부총장)

송 교수와 이 원장은 신재벌정책의 각론에 대해선 엇갈린 견해를 보였다.

그러나 재벌 구조조정을 기업도 살고 국가도 사는 "윈-윈(win-win) 전략"
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데엔 한목소리를 냈다.

이를 위해선 기업 구조조정 뿐 아니라 금융 정부 정치 노동 등 경제.사회
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혁이 균형있게 이뤄져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대담내용을 간추린다.

[ 대담 : 송병락 < 서울대 부총장 > - 이선 < KIET 원장 >
사회 : 노성태 < 한국경제신문 주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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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성태 한국경제신문 주필 =정부의 재벌정책을 평가한다면.

<> 송병락 서울대 부총장 =청와대와 재계가 합의한 기업개혁 5대원칙은
평등한 약속이라기 보다는 정부가 강제한 사항이라는 시각이 많다.

정부 일각에선 획일적인 부채비율 축소목표를 정해놓고 알짜 기업을 외국에
내다 팔라고 압박하고 있다.

융통성이 필요하다.

정부가 기업에 채찍을 가할수록 기업 이미지는 악화되고 만다.

특히 정부 정책이 설익은 채로 쏟아져 나와 기업과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정책중 일부는 당사자인 기업인 쏟빼놓은 채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정책결정 메카니즘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 이선 산업연구원장 =IMF 체제를 분수령으로 한국경제는 좋든 싫든 새로운
경쟁환경에 들어섰다.

정부가 강압하지 않더라도 기업 스스로 구조조정에 나서야 할 처지다.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환경엔 새로운 규칙(rule)이 필요하다.

새로운 룰을 빨리 정착시켜 기업도 살고 근로자도 살고 나라도 살자는
"윈-윈(win-win) 전략"이 신재벌 정책의 실체다.

21세기 지구촌 경제에 걸맞는 기업상을 세우자는 취지다.

정부가 재벌을 공적으로 몰아붙인다는 일부 시각은 편견일 뿐이다.

포퓰리즘(populism)으로 신재벌정책을 본다면 정치적인 발상이다.

<> 노 주필 =정부가 지나치게 기업경영에 간섭하고 있다는 견해가 있다.

<> 이 원장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원배분이 이뤄지는 전통적인 경제학
이론으로 보면 재벌정책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신제도학파 이론은 시장의 일반균형 이론을 수용하는 가운데 자원
배분 과정에서 제도와 조직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제도는 경기 규칙이다.

조직은 기업과 정부등 경기 참가자에 비유할 수 있다.

경기 규칙을 수립하는 한편 선수들의 체질을 강화시키는게 정부 의도라고
생각한다.

모든 국민이 신뢰하고 존경받을 수 있는 기업군을 제도적으로 뿌리
내리자는게 신재벌정책의 근간이다.

<> 송 교수 =미국에선 정부의 경제관련 조직보다 기업이 먼저 생겼다.

미국의 기업들은 1800년대부터 이미 대기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반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1913년에야 창립됐다.

정부 설립 이전의 경제 시스템이 "야생 자본주의"였다면 "정부가 길들이는
자본주의"를 지나 이제는 "시장이 정부를 앞서는 자본주의"의 단계에 와
있다.

피터 드러커 교수는 "정치나 정부가 기업에 공갈과 협박을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경제는 인치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21세기 정보화 사회는 바로 다양화의 사회다.

다양한 형태의 산업과 조직이 많아야 국가가 경쟁력을 갖는 시대다.

"선단식 경영을 해야 한다" 또는 "절대 안된다"는 말들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주장들이다.

획일적인 잣대가 더이상 들어맞지 않는 사회로 들어가고 있다.

정부가 모범답안을 정해 놓고 기업에 강요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경제는 관치가 아니라 시장 시스템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 노 주필 =향후 재벌개혁의 핵심과제중 하나인 기업지배구조 개선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데.

<> 송 교수 =기업지배구조는 기업을 꾸리는 한가지 방식일 뿐이다.

동네 구멍가게를 예로 들어보자.

주인이 독단적으로 운영하는 가게가 있는 반면 가족들이 중지를 모아 경영
하는 데도 있다.

종합병원을 좋은 병원이라고 평할때 소유자 병원이냐, 전문경영인이 운영
하는 병원이냐를 따지진 않는다.

저 상속 등 비경제적인 기준에 맞춰져 있다.

변칙상속은 법을 잘못 만든데 따른 것이다.

기업에 대한 평가는 상품을 얼마나 잘 만들어 내느냐에 달려 있다.

전문경영체제냐, 족벌체제냐 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기업 소유지배 구조에 정부가 왜 그리 간섭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 이 원장 =개도국 시절에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때엔 대주주가 자유자재로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었으며 또 바람직했다.

그러나 이젠 성숙경제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새로운 기업지배 구조가 필요한 시기다.

대주주의 전횡으론 더이상 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소액주주권이나 기업지배 구조 개선작업이 자연스럽게 부각된
것이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작업은 새로운 시대에 합당한 지배구조로 발전해 가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 노 주필 =김 대통령은 8.15 축사에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를 막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어떻게 평가하나.

<> 이 원장 =과거에 기업은 금융지배가 필요했다.

외형 위주의 성장을 하다보니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기업이 금융을 독식하면서 금리가 높아졌다.

고금리는 중소기업과 국민들의 고통으로 이어졌다.

최근엔 대기업이 회사채 시장이나 제2금융권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 자금
흐름이 왜곡되는 경향이 있다.

이제 기업경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기업은 외형이 아니라 수익으로 평가받는 시대다.

기업 스스로 금융권에 대한 지배욕구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 송 교수 =경제가 튼튼해지려면 금융과 실물의 두 바퀴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은행은 세계 제일의 정보산업이며 21세기 성장산업이다.

일본 미쓰이그룹의 경우 은행과 보험회사를 각각 몇개씩 가지고 있다.

미쓰이의 핵심기업은 단연 사쿠라은행과 미쓰이물산이다.

이들 두 축이 도요타 자동차와 도시바전기, 토레이섬유 등 제조업을
떠받치는 기반이다.

물건이 가면 돈이 오는게 거래다.

기업그룹의 규모가 커지면 거기에 걸맞은 금융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한국도 90년대 초반부터 금융전업군을 만든다고 공언해 왔다.

외국과의 경제전쟁 시대에 누가 소유하느냐는 것은 큰 문제가 안된다.

기업의 금융지배를 막는다는건 시대에 역행하는 조치다.

<> 노 주필 =재벌정책의 큰 화두인 빅딜은 어떻게 보나.

<> 송 교수 =빅딜은 득보다 실이 많다.

대우전자의 빅딜을 발표해 놓으니 세계시장에서 대우 제품이 팔리지 않는다.

주식가격도 폭락했다.

삼성차 빅딜도 꼬여가고 있다.

정부는 중복.과잉 투자 논리로 빅딜을 밀어붙인다.

그러나 과잉생산은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한국의 생산시설이 모두 없어져도 세계시장에서 물량은 남아 돈다.

일본과 미국의 대형회사가 세계물량을 다 댈수 있는 게 현실이다.

이들은 가만히 있는데 우리만 묶고 줄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기업이 아니라 산업차원에서 문제를 다뤄야 한다.

기업의 규모만 따졌지 국내경쟁 업체가 몇개나 돼야 국가경쟁력에 도움이
되는냐 하는 산업적인 측면은 고려하지 않았다.

자동차를 현대로 몰아주고 대우자동차가 팔리면 토종 자동차사는 1개만
남는다.

반면 일본엔 반도체 회사가 24개, 조선 23개, 자동차 10개에 달한다.

내부에서 싸우다 보면 군계일학이 나온다.

일본의 전자와 자동차 산업분야 경쟁력은 내부경쟁에서 나온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 이 원장 =해외에선 이미 21세기 무한경쟁 시대에 대비한 대형 기업간
인수.합병(M&A)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21세기 무한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기업들의 생존전략이다.

그러나 한국의 재벌은 정상적인 M&A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여건에 놓여
있지 않다.

5대 재벌의 평균 부채비율은 장부상 3백30%에 달할 정도다.

여기에 계열사 출자와 자산 재평가를 제외하면 실제부채는 현대의 경우
1천3백%를 웃돈다.

대우의 부채비율도 7백%를 넘는다.

부채비율이 4백~5백%에 달하는 기업이 시장에서 거래가 될 순 없는 일이다.

정부개입이 불가피한 것도 그래서다.

삼성자동차도 그렇다.

애당초 경제논리에 의해 세워진 회사가 아니다.

비정상적인 기업이 시장에서 정상적인 M&A 대상이 될수 없다.

재벌들이 자기 돈으로 사업을 하다 부실을 낳는다면 아무 문제가 안된다.

그러나 대규모 부채를 안고 있는 기업이 쓰러진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부실의 상당부분이 국민의 부담으로 전가되기 때문이다.

심각할 경우 국민경제까지 망칠 수 있다.

두고 보는게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

<> 노 주필 =바람직한 재벌개혁의 방향을 제시한다면.

<> 송 교수 =사회전체 시스템이 개선돼야 기업의 21세기 경쟁력이 보장된다.

그러나 국가개혁의 노력이 기업집단에 너무 쏠려 있다는 인상을 준다.

IMF의 근본원인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원인진단 결과 정치가 문제라면 정치부터, 정부가 문제라면 정부부터 개혁
해야 한다.

진단을 잘못하면 처방이 잘못되고 위기는 다시오게 된다.

정치와 정부의 투명성 없이 기업의 투명성은 보장되지 않는다.

정치 금융 정부 언론 노동분야가 후진적인 상태에서 기업만을 선진화하려고
메스를 가하면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

재벌개혁에 들이는 힘중 일부만 공공개혁에 쓴다면 국가경제는 더욱 발전할
거라고 본다.

<> 이 원장 =IMF 체제는 기업 금융 정부 정치분야의 구조적인 문제들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현 정부가 4대부문 개혁을 한결같이 추진하는 것은 이같은 진단에 따른
조치다.

우리는 항상 미래지향적으로 현재의 변화를 해석하고 적응해 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제 운동장이 달라졌다.

운동경기를 하는 환경과 규칙이 바뀌었다는 얘기다.

과거에 젖어 있다면 변화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적응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과거엔 운동선수인 기업들이 허약해도 국내 시장에서 고도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세계무대에서 초일류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를 맞았다.

여기에 대응하려면 국내 기업의 체질이 강해져야 한다.

구조조정과 제도개혁, 경제주체들의 변신은 21세기의 생존 키워드다.

< 정리= 유병연 기자 yooby@ >

[ 신 재벌정책 쟁점 비교 ]

<> 정책취지
- 송병락 : 정부가 대그룹의 단점을 부각시켜 ''뭇매''
- 이선 : 21세기형 개혁위한 제도 정착

<> 정부개입
- 송병락 : 경제는 시스템에 따라 움직여야
- 이선 : 기업체질을 강화하기 위해선 불가피

<> 기업지배 구조개선
- 송병락 : 지배방식은 기업 스스로 선택
- 이선 : 성숙경제에 걸맞은 지배구조 정착이 필수

<> 금융지배 차단
- 송병락 : 기업규모가 커지면 걸맞은 금융이 필요
- 이선 : 자금순환의 왜곡을 바로잡기 위한 장치 필요

<> 대우해법
- 송병락 : 산업 및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풀어야 한다
- 이선 : 근본적인 구조조정 없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 구조조정 주도권
- 송병락 : 기업당사자가 주도
- 이선 : 주도권은 채권단이나 정부가 가져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