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수 < 서울대 교수 / 서양사학 >

오늘 7월14일은 파리 민중이 바스티유 성을 함락시킨 지 꼭 2백10돌이 되는
날이다.

1789년 당시 파리의 상황은 급박했다.

국왕 루이16세는 국민의회를 제압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했다.

의회는 국왕에게 항의했지만 힘이 없었다.

이 무력한 의회를 구한 것이 바로 파리의 민중이었다.

국왕은 군대를 철수시키고 자유 평등 박애의 3대 혁명정신을 상징하는
3색기를 받아들였다.

바스티유의 함락은 매우 중대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것은 전제주의의 붕괴를 뜻했다.

이에 힘입어 국민의회는 "8월4일 밤의 선언"을 통해 봉건제의 전면적인
폐지를 결의했다.

8월26일엔 "인간과 시민의 권리들에 대한 선언"을 채택, 새로운 사회정치
질서의 토대를 놓았다.

이렇듯 7월14일은 프랑스혁명을 상징하는 날이 되었다.

우리가 2백년도 넘은, 그것도 머나먼 이국에서 일어났던 이 사건을 여전히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프랑스혁명이 제기했던 문제들이 아직도 우리에게 "뜨거운 현실"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프랑스혁명이 후세에 남긴 인권에 관한 주요 문서는 세 가지이다.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1789년의 "인권선언"이다.

1948년에 유엔이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할 때 준거가 되었던 것도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그냥 "인권선언"이라고 부르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인권선언"은 취지를 밝히는 비교적 짤막한 전문과 권리들을 나열한
17개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완성된 것이 아니지만 프랑스혁명의 기본정신을 충실하게 보여준다.

흔히 "선언"에 대해 두 가지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하나는 그것이 추상적이고 지나치게 보편적이어서 그 의미가 공허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것이 보편주의적 원칙이기는 커녕 부르주아지라는 특정
계급의 이익을 반영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 두 비판은 근거가 박약하다.

"선언"은 작성 당시의 구체제 현실이나 심지어 오늘날의 우리 현실에 비추어
보아도 매우 구체적인 의미를 지닌다.

설사 그것이 당시엔 부르주아지들에게 특히 유리했다고 하더라도 모두의
해방을 위한 보편적인 가치를 갖는다.

"선언"의 핵심 내용은 처음 3개조에 모두 들어있다.

제1조(사람들은 자유롭게, 그리고 권리에서 평등하게 태어나며 또 그렇게
존속한다)는 개인들이 시민사회의 형성에 앞서 갖는 자연적 조건을 강조했다.

제2조(모든 정치적 결사의 목적은 인간의 자연적이고 소멸할 수 없는
권리들을 보존하는데 있다.

이 권리들은 자유 소유권 안전, 그리고 압제에 대한 저항이다)는 자연상태
이후에 나타나는 정치사회의 목적을 제시했다.

제3조(모든 주권의 원리는 본질적으로 국민에게 있다)는 권력의 정당성
원리를 설명했다.

"선언"은 네 종류의 인권 가운데 자유에 관해서만 제4조에서 정의하고 있다.

나머지는 당연한 것으로 간주한다.

반면에 신체와 사상의 자유에 대해서는 여러 조항을 할애하여 자세하게
규정한다.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존속하고 주민등록증에 지문을 찍어야 하고 체포되자
마자 수갑을 물리는 우리의 각박한 현실에서 위의 조항들이 과연 구체성을
결여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공동의 기여(곧 세금)는 모든 시민들에게 능력에 따라 평등하게 배분되어야
한다"는 제13조는 우리에게 조세의 형평을 묻고 있다.

"선언"은 우리의 권력 전도현상을 고발한다.

"선언"은 국가의 존재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의 "친애하는 국민"이
단순히 통치대상이 아니라 나라의 진정한 주인임을, 따라서 "무서운 국민"
임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인권은 분명 민주주의의 기초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국가안보라는 이름 아래 주인이기를 그치고 객체로
머물러왔다.

일제가 한반도의 모든 주민들을 잠재적인 폭도로 간주한 것은 제국주의의
속성상 그렇다고 하더라도 해방 이후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우리는 과연
그러한 "당국자들의 폭민관"을 극복했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인권의 혁명"은 우리에게 새로운 물음을 던진다.

왜냐하면 "인권"은 프랑스혁명이 제시했던 자유권(제1세대 인권)을 넘어
사회권(제2세대 인권) 환경권(제3세대 인권), 심지어는 생물학적 실험에
대한 통제나 유전자 조작에 대한 항의(제4세대 인권) 등 삶의 존재양식에
따라 크게 확장될 수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프랑스혁명정신은 2백여년의 시차를 관통하여 우리 가슴에 진한 감동으로
전해져오고 있다.

국가권력의 현장에서부터 삶의 근저에 이르기까지 비뚤어진 현실을 바로
잡을 것을 엄중히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