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원 < 미국 웰스파고은행 수석 부행장 >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경제가 최근 주식시장이 활성화되고 산업생산이
증가하는 등 급속한 V자형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과연 아시아 경제가 본질적으로 안정을 되찾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직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아시아 전체 GDP(국내총생산)의 각각 70%와 10%를 차지하는 일본과 중국의
경제가 받쳐주지 않는 한 아시아의 근본적인 회복은 어렵다.

일본이 지난 1.4분기에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일본 경제가
바닥을 벗어났다고는 보지 않는다.

일본경제가 위기를 맞게 된 원인이 금융 등 비제조업 분야에 있는 상황에서
제조업 주도에 의한 일시적인 경기 회복은 큰 의미가 없다.

더구나 일본정부가 경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엄청난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는 점도 성장률 수치에 대한 신뢰감을 떨어뜨린다.

중국 역시 최근 경제구조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실업자가 급속히 늘어나는
등 많은 문제들과 씨름하고 있다.

중국 국영기업들은 작년부터 지금까지 1천5백여만명을 해고했다.

중국정부는 이러한 실업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국가 재정을 동원, 생산을
확대토록 하고 있으나 오히려 부작용을 증폭시키고 있다.

정부재원이 꼭 필요한 분야에 투자되기 보다는 불필요한 생산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고 있다.

일본과 중국의 이같은 고질적 문제점들이 바로 잡혀지지 않는 한 아시아
경제의 안정은 무의미하다.

미국은 경제활황을 언제까지 지속시킬 것이냐가 관건일 만큼 호황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경제는 소비지출과 주식시장이라는 양대 축에 의해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따라서 최근 고조되고 있는 물가상승 압력에 대해 통화당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가 큰 관심사다.

미 통화당국이 현재 시장에서 예상하는 대로 이달말께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는 데 그칠 경우 증시에 대한 타격은 별로 없을 전망이다.

그러나 미 연준리(FRB)가 인플레에 선제적인 금융정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만큼 이달말에 이어 오는 8월에 또 한차례 금리가 인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0.5%포인트이상 금리가 인상된다면 증시에서도 상당한 조정이
불가피해질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주가가 15~20% 하락할 수도 있다.

주가하락시 소비지출 감소는 불가피하다.

이는 지금까지 소비지출의 증가가 주가상승에 기반을 둔 것이었기 때문이다.

미.일 경제를 비교해 볼 때 가장 큰 차이점은 시장의 기능이다.

미국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기업활동이 결정되는 시장경제 체제인데
반해 일본은 정부의 간섭이 더욱 크게 작용하는 비시장 경제다.

이러한 차이점은 90년대 들어 두드러지고 있는 양국의 산업발전 과정에서
극명히 대비된다.

미국은 자유로운 시장법칙에 의해 소프트웨어 전자통신 인터넷 컴퓨터 등
디지털경제가 약진하면서 산업기반을 재구축하는데 성공했다.

반면 일본은 정부의 개입하에서 한정된 경제적 재화와 자원이 제조업 쪽에
치우치는 바람에 글로벌 산업 흐름에 적응하지 못했다.

일본이 개혁을 하고 있다지만 본질적인 문제점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단적인 예는 금융산업에 대해 정부가 계속 강력한 입김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일본의 주요 은행장은 대장성이나 일본은행의 고위 간부를 지낸
사람들의 몫으로 돼 있다.

은행의 실무를 경험해보지 않은 이런 사람들이 경영을 제대로 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일본의 이런 잘못된 관행들 가운데 상당 부분을 그대로
답습해 왔다.

한국경제가 최근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지만 바로 이 점이 한국의 향후
경제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지나치게 급속하다고 할 정도로 한국이 빠르게 금융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는
원동력은 금리하락에 따른 증시로의 자금이동, 주가 상승으로 인한 소비지출
증가로 요약된다.

그런데 이 중 상당 부분이 위기 극복 차원에서 시행되고 있는 정부의 지출
증대에 힘입은 결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단기적 처방이 장기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지출이 언제까지 계속 확대될 수는 없다.

어느 순간에는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

또한 빠른 경제회복은 기업의 근본적인 구조조정 의욕을 저하시킬 수 있다.

경제가 살아남에 따라 구조조정이 불필요하다는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수십년동안 누적돼온 경제 시스템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수술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갈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정부 및 기업 관계자들은 외환 위기 당시의 개혁 초심으로 돌아가서
다시금 신발끈을 조여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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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미국에서 7번째로 큰 은행인 웰스파고은행의 수석 부행장겸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한국계 손성원(54) 박사가 23일 뉴저지 한식 연회장인
팰리세이디엄에서 주미 한국상공회의소(회장 김영만) 주최로 열린 오찬
세미나에서 행한 강연을 요약한 것이다.

70년대초 앨런 그린스펀 현 FRB 의장과 함께 백악관 경제 자문위원을 역임한
그는 뉴욕타임스와 월 스트리트 저널 등에도 자주 인용되는 등 미국내 주류
이코노미스트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