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론의 역할은 일반적인 원리를 추상적으로 발전시키는데 있지만
단지 그러한 것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론에 주로 관심있는 경제학자들도 구체적인 문제로부터 힌트를
얻어 이론을 발전시켜 왔다.

때문에 나의 연구주제는 대부분이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주의깊은 관찰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케네스 애로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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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경제학은 점점 더 추상화되고 수학적인 기법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져
가고 있다.

정치와 문화 현상과 같은 사회문제와는 달리 경제문제는 수량화가 가능하고
계량적인 분석이 비교적 쉽기 때문에 경제학은 보다 일찍 이러한 경향을
띠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현대 경제학이 엄밀성을 너무 과도하게 추구한 나머지 현실성을
잃어버린 추상적이고 공허한 이론에 치우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러나 경제학이 정밀한 과학으로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추세는
피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경제이론에 수학적인 기법을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
중반부터 50년대 중반까지의 기간에 일군의 수학자와 경제학자들의 업적
이었다.

이들의 연구성과는 경제이론에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 왔다고 할 수
있다.

제2차세계대전을 전후한 전쟁의 분위기에서 유럽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두뇌집단이 형성되면서 새로운 경향의 연구가 발전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 중에는 최초의 컴퓨터 개발에 참가하였으며 게임이론을 개발한 수학자
폰 노이만과 그후 노벨상을 수상한 내쉬, 드브루, 쿠프만스 등의 학자들이
포함돼 있다.

그 가운데 애로우는 당시 가장 탁월한 소장학자중의 한 사람이었다.

애로우는 경제학계에서는 전설적인 존재로서, 또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운
수많은 일화를 후광과 같이 지닌 천재적인 학자로서 알려져 있다.

그의 천재성은 노벨경제학상이 제정된지 4년만에 51세라는 파격적으로
젊은 나이에 수상자가 되었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그가 이룩한 탁월한 업적이 많기 때문에 노벨상 수상당시 무슨 업적으로
수상을 했는가를 경제학자들이 궁금해 할 정도였다.

학계에선 그가 2-3개의 노벨경제학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하는 말들도
나돌기도 했다.

애로우는 1921년 뉴욕시에서 태어나서 뉴욕시립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
했으며 51년 콜럼비아대학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사실 그의 중요한 업적은 이미 박사학위를 받기전에 이룩한 것이다.

대학원과정에 있는 동안 시카고대학과 랜드(RAND)연구소에서 일하기도
했으나 49년부터는 스탠포드대학에 자리를 잡았다.

이어 69년에 하버드대학로 옮겼다가 79년 스탠포드대학으로 돌아와 지금껏
강의와 연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독특한 이름과 외모 때문에 미국인디언 출신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실상 그는 유태계의 혈통으로서 현재 미국의 재문장관 서머즈의 외삼촌
이기도 하다.

애로우는 이론경제학과 수리경제학분야에서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학자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업적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만큼 굵직한 것만 들더라도 4-5개가
된다.

그의 연구가 영향을 미친 분야를 크게 대별하면 일반경쟁균형의 존재와
효율성의 문제, 사회선택이론, 불확실성하의 선택이론, 정보경제학, 조직
이론 등을 들 수 있다.

김완진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wjkim@snu.sc.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