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티르 < 말레이시아 총리 >

세계화(globalization)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점은 부인하지 않겠다.

그러나 "세계화는 좋은 것이며 모든 국가가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세계화는 결코 "천국"에서 내려온 게 아니다.

세계화의 완벽함을 무조건 강조해서는 안된다.

민족주의 제국주의 국제주의 등 역사적으로 한 시대를 주도했던 사상들은
많았다.

그러나 이것들도 모두 완벽하지는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세계화 역시 후대에 잘못된 사상으로 판정될 수 있다.

오늘의 사상을 주도하고 있는 세계화는 통신 및 교통의 발달로 가능해졌다.

현대 서방 국가들은 세계화를 통해 큰 기회를 얻었다.

세계화는 그동안 많은 독립국가들이 등장함으로써 필연적으로 발생한 국가간
장벽을 깰 수 있는 무기였다.

공산세력의 몰락으로 양극체제가 소멸되면서 세계화는 더 맹위를 떨쳤다.

지금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에서는 개별 국가의 선택권이 크지 않다.

각국은 자발적이든 아니든 서방 자본주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비정부기구(NGO)들도 세계화를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다.

그들은 약소 국가의 고유 행위를 "악한 행동"으로 규정, 이를 중단시키키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서방 NGO들은 군사력을 배경으로 목표물(약소국가)의 저항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NGO들은 세계화의 과정에 참여할 권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서방주도 세계화의 단적인 예다.

WTO는 중소국가에 대한 서방의 정치.경제적 개입을 정당화시키고 있다.

그러면서도 일부 서방국은 WTO를 무시하고 중소국가에 대해 무역보복조치를
일삼고 있다.

지금까지 세계화에 저항하는 국가들은 많았다.

아시아 국가들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서방이 주도하는 세계화에 굴복하고 말았다.

서방 투자가들은 아시아 국가에 들어와 경제를 흔들어 놨다.

이렇게 되자 아시아 국가들은 "살려달라"고 구걸하는 나약한 신세로
전락했다.

아시아 국가들은 세계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있는 재산마저 모두 잃게 될
것이라는 무서운 현실을 깨닫게 됐다.

서방의 무기는 아주 간단했다.

약소국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약소국들이 외국의 물건을 수입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서방 자본가들은 또 투자자금을 주식시장에서 회수, 약소국의 정부와 기업을
파산지경으로 몰고갔다.

그들은 총 한 방 쏘지 않고 한 나라의 경제 사회를 무방비 상태로 만들었다.

서방세력들은 세계화를 앞세워 약소 국가의 권리를 서서히 잠식했다.

어떤 경우에는 꼭두각시 정부를 세우기도 했다.

그들은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들을 앞세워 시장개방 압력을 가한 후
국제 지원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

서방국가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신생 독립국가를 하나하나 세력권내로
편입시켰다.

이들은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사상까지도 통제하려 했다.

세계화는 결국 "세계 정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서방진영은 신생 독립국을 자신의 우산속으로 끌어들인 뒤 신흥국가들을
공략, 이들마저 세계화의 틀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신흥국가들은 이제 국경이라는 물리적인 방어벽만으로는 자국의 안전을 지킬
수 없을 것으로 느끼고 있다.

비정부기구(NGO)들이 정부를 압박했고 대규모 "세계화 자본"이 시장을
삼켜버렸다.

외국 자본이 경제시장을 차지하면 정치적인 영향력도 갖게 마련이다.

결국 해당 신흥국가는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

이같은 현상은 현재 경제적인 혼란에 휩싸인 동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곳 주민들은 굶주리고 정부도 약하다.

서방국가의 "충고"를 따른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경제가 회복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신흥국가들은 경제가 회복된 후 그들의 모든 것이 외국 기업과 은행들의
지배하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서방국의 이익을 위해 추진되고 있는 세계화는 신흥국가를 서방국의 생산
공장으로 전락시키는 사상일 뿐이다.

신흥국가들에도 자립의 길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세계화는 늦춰져야 한다.

민주주의는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서로의 기회를 인정하는 게 기본
원칙이다.

약소국가에 세계화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선택의 필요성을 인정해야 한다.

세계화는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그러나 말레이시아가 세계화를 거부했을 때 서방 세력들은 이를 용인하지
않았다.

서방언론은 말레이시아를 무차별 공격, 경제에 타격을 줬다.

국가 신용도도 크게 떨어졌다.

신흥국들은 필요에 따라 서방측이 제시하는 정책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정책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시장을 개방한 후 역효과가 났을 때는 다시 닫을 수 있는 권리도 존중돼야
한다.

신흥국들이 세계화에 나선 후 오히려 더 큰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사례는
많다.

세계화를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옳지도 않다.

비민주적이다.

서방국가들은 다른 나라에 적응할 시간을 줘야 한다.

해당국가가 동의하지 않는 한 세계화를 강요해서도 안된다.

(LA타임스 신디케이트 본사독점전재)

< 정리=한우덕 국제부기자 woodyh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