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국 < 강원대학교 경제무역학부 교수 >

누구나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시장경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법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의 과제다.

그런데 현재 추진되고 있는 경제개혁은 그런 것 같지가 않다.

첫째로 금융개혁이 그렇다.

정부의 과제는 금융기관들에 자율성을 보장해 주고 이들이 자유로운 경쟁을
할 수 있는 금융시장질서를 확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은행의 지배구조와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둘째로 노동부문의 개혁도 마찬가지다.

노동조합은 강제를 행사할 수 있는 특혜받은 집단으로서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방해하고 개별 노동자들에게 이익을 주기는커녕 실업의 원인을 제공
하기도 한다.

따라서 정부의 개혁과제는 노동조합에 부여된 특권을 제거하는데 있다.

그러나 정부는 특권을 제거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노사정위원회의 상설화
를 위한 입법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경제를 조종할 수 있는 또다른 법적 특권을 사용자단체와 함께 부여하고
있다.

셋째로 기업의 구조조정과 관련된 정부의 과제는 기업들의 자율적인 구조
조정을 방해하거나 또는 자유로운 경쟁을 방해하는 법적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대신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구조조정에 개입하고 있다.

넷째로 사회안전망과 관련된 분야다.

의료보험제도, 연금제도와 관련된 정부의 개혁과제는 현행 제도를 사적
보험시장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법적 기초와 그리고 시장 언저리에 있는
그룹들에 최소의 생존을 보장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일이다.

현행 제도에는 이미 실패 요소가 고질적으로 내재돼 있기 때문에 어떻게
개선하든 그 요소가 제거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는 사적 보험시장 질서를 형성하기 위한 정책 대신에 복지계획
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전 국민의 연금시대 개막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추진하는 확대된
연금제도가 그것이고 또한 계획된 통합의료보험제도가 그것이다.

경제개혁 내용에는 "이상 사회"를 건설하려는 야심이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개혁은 열린 사회를 위한 개혁이 아니라 폐쇄된 사회를
위한 개혁이다.

그것은 하나의 관치경제를 또다른 관치경제로 바꾸는 의미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야심적인 개혁은 가능하지도 않다.

사회경제는 단순한 인과관계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매우 복잡한
현상일 뿐만 아니라 더구나 개혁에 필요한 우리의 지식은 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에서 지식의 자만은 금물이다.

그 자만의 결과가 치명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생생히 체험했다.

우리가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지식을 획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개혁을 할 때에는 지식에 대해 겸손해 하는 노련한 외과의사가 집도할 때의
기도하는 심정을 가져야 한다.

현대사회와 같이 복잡한 사회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개혁은 제한된
이성을 이용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나씩 하나씩 점진적으로 기존 법적
제도를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자유로운 경제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제거하자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열린 사회를 위한 개혁이다.

사회가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우리는 그만큼 더 열린 사회로서의 시장경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 이성의 한계에 순응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 kkmin@cc.kangwon.ac.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