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프랑스 라파즈사는 벽산과 동부한농화학의 석고보드 사업부문
을 동시에 인수했다.

벽산과 동부한농화학은 국내 석고보드 2,3위 생산업체.

라파즈는 이들 두회사를 인수함으로써 우리나라 석고보드 시장의 60%
가량을 장악하게 됐다.

이에 앞서 지난해 9월 미국계 질레트코리아는 로케트전기의 상표와 영업권
을 장기 임대함으로써 국내 건전지업계 1위 업체로 떠올랐다.

지난 한햇동안 우리 산업계가 겪은 두드러진 변화중 하나로 외국기업의
약진을 꼽을 수 있다.

외국기업은 환란이후 달러가치가 치솟은 틈을 이용해 한국내 생산기반을
강화하고 시장점유율을 높였다.

국내 소비자에 한층 더 가깝게 다가선 셈이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단시일내 외환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빗장을 과감히
풀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해당 산업구조 및 산업정책방향과 적합한지를 제대로 따지지
못한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외국기업과 우리나라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외국기업의 국내 진출은
한층 가속화됐다.

신문용지의 경우 한솔제지 신호제지 한라제지가 잇따라 외국기업에 사업
부문을 매각, 외국사가 국내시장의 70%가량을 점유하게 됐다.

살충제 시장도 다국적 제약업체인 한국존슨이 지난해 4월 에프킬러 생산
업체인 삼성제약을 인수해 시장점유율 1위업체로 부상했다.

이밖에 서울 흥농 중앙종묘 등 선두권 종묘업체들이 잇따라 외국사에
넘어가면서 국내 씨앗시장도 외국기업간 격전장으로 바뀌었다.

산업자원부는 환란직후 외국기업의 국내 진출은 주로 소비재분야 등 시장
확대 효과가 큰 품목에서 시작돼 중화학공업 분야로 확산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단순소비재 등 국내 수요가 꾸준히 이어지는 품목에서 외국기업의
투자가 활발했지만 정부가 파격적인 투자유인책을 마련하면서 우리나라가
전략적 투자대상지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볼보는 한국을 아시아 굴삭기시장의 핵심공급기지로 육성하기 위해 지난해
삼성중공업의 중장비부문을 인수했다.

볼보측은 올해 스웨덴 독일 등 유럽의 굴삭기생산설비를 한국으로 옮겨
생산능력을 확충할 계획이다.

미국 다우케미컬은 LG와 합작으로 전남 여천유화단지에 연산능력 1백33만t
규모의 폴리카보네이트 공장을 세우고 있다.

이는 한국을 아시아시장 공급기지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적 투자에 따른
것이다.

세계 최대 화학업체인 듀폰도 아시아 스판덱스시장을 겨냥, 동국합섬의
스판덱스 사업인수를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 전자업종에서는 비메모리 반도체 및 무선통신기기 제조업 분야에 대한
미국계 기업의 투자가 강세를 나타냈다.

페어차일드반도체사는 4억6천만달러에 삼성전자 부천공장을 인수했다.

모토로라사는 5천만달러를 투자, 어필텔레콤의 구주를 취득했으며 팬택의
증자에도 참여했다.

미국 ATI사의 케이만군도 자회사인 CIL사는 아남반도체에 6억달러를
투자키로 했다.

정부의 각종 투자유인책과 기업 및 금융권의 강도높은 구조조정에 힘입어
추락한 국가신용이 회복되면서 외국자본의 제조업에 대한 투자는 크게
늘었다.

지난해 외국인의 제조업에 대한 투자규모는 57억3천만달러.

이는 전체 외국인투자규모중 64.8%를 차지하는 것이다.

97년 전체 외국인투자액중 제조업투자가 차지한 비중은 33.7%에 불과했다.

특히 M&A(인수합병) 방식의 직접투자가 크게 늘었다.

지난해 5월 외국인주식투자한도가 폐지되고 국내기업에 대한 M&A 전면
자유화 등의 조치가 취해진데 따른 결과다.

결과적으로 외국인투자가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증가했다.

산업자원부는 최근 "외국인 투자동향분석"을 통해 98년 외국인투자가 늘어
외국인직접투자(FDI)누계액이 경상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전년도의 3.5% 수준에서 7.1% 수준으로 높아진 것으로 추정했다.

외환위기로 국가신용이 크게 떨어졌는데도 외국인 투자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질적인 측면에서 보완할 점도 적지 않다.

정보통신 의약 생명공학 문화산업 등 미래 고부가가치 창출신산업에 대한
외국인투자가 미흡하다.

또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유치도 활성화되지 못했다.

따라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할수 있는 최첨단 업체의
투자를 유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이익원 기자 ik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