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통산성은 지난 97년초 한 보고서를 냈다.

제목은 "디지털경제 시대를 향해"(Towards the Age of the Digital
Economy).

그러나 오히려 "통한의 보고서"로 더 유명하다.

통산성은 이 보고서에서 "90년대들어 일본경제의 침체와 미국경제의 고도
성장이 극명하게 대비된 것은 근본적으로 정보기술(IT)의 격차에서 비롯됐다"
고 분석했다.

일본이 호황에 도취해 정보기술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한 사이 미국은 장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정보기술 투자를 늘려 역전의 원동력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또 이런 결과를 낳게 한 주범은 바로 "낙후된 행정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한마디로 일본 정부 스스로가 지난 과거를 뉘우치며 통렬한 자기
비판적 내용을 담은 "반성문"이었다.

통산성은 미국을 다시 따라잡기 위해서는 정부의 모든 시스템을 디지털화
하고 경제구조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관료주의와 비효율을 모두 없애고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전자상거래를 도입하는 등 디지털경제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지적
했다.

보고서는 특히 전자정부(Electronic Government)의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고
역설했다.

일본 통산성이 "전자정부"를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보고서는 "국가 전체의 경쟁력제고는 효율적인 정부조직을 갖추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광속경제시대는 과거의 낡은 정부형태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인적 집단"으로서의 정부가 "제도의 그물"로 통치하는게 낡은 정부다.

낡은 정부의 역할은 대부분 경제주체들의 행동을 규제하고 감시하는데
치우친다.

그런 정부는 이미 가상세계에서 빛의 속도로 바뀌는 기업 등 경제주체들의
움직임을 좇는 것도 어렵다.

미국이 승승장구하던 일본경제를 꺾고 앞으로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전자
정부를 먼저 실천해 나간 덕분이었다.

클린턴대통령은 지난 93년 "정보기술을 통한 정부의 리엔지니어링을 추진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전자정부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이 선도한 전자정부는 어떤 형태일까.

"네트워크로 움직이는 실체없는 정부"다.

사회 모든 부문에서 지식과 정보가 물흐르듯 유통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최대한 작고 효율적인 정부"다.

전자정부는 또 행정조직과 모든 사람들(납세자 공급자 기업고객 유권자),
모든 기관들(학교 연구소 병원 등), 그리고 전세계의 다른 나라들을 디지털
네트워크로 연결한다.

그런 정부는 원하는 사람들에게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정보와 서비스를
바로 제공할수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 중심지인 팔로알토시는 미국이 구상한 전자정부의 실체적
인 모습을 보여준다.

팰로앨토시는 전기세, 수도료 납부와 같은 사소한 민원에서부터 사업자
등록이나 건축허가 등 모든 행정업무를 인터넷으로 24시간 서비스하고 있다.

종전에는 민원인들이 시청을 직접 방문해 담당자들을 일일이 찾아가면서
일을 처리해야 했다.

민원인들은 아까운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시정부도 복잡한 절차로 인해 행정 효율성이 떨어졌고 적지 않은 비용부담
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한 행정업무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시민은 컴퓨터 앞에 앉아 민원을 손쉽게 처리하고 각종 인.허가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받을수 있게 됐다.

덕분에 팰로앨토는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도시로 탈바꿈했다.

실리콘밸리가 하루에도 1백여개 이상의 벤처기업을 쏟아 내면서 세계의
정보기술 메카로 자리잡고 있는 배경에는 바로 이같은 디지털 행정지원도
한몫하고 있다.

미국은 오는 2000년 1월까지 모든 주정부를 팰로엘토시처럼 만든다는 계획
이다.

다른 선진 각국도 이미 전자정부 구현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게 선진7개국(G7)이 공동으로 추진중인 "정부 온라인(GOL)
프로젝트"다.

7개 회원국 정부간에 디지털 네트워크를 구축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없이
정보를 공유하고 인터넷을 통한 상품및 서비스의 자유왕래를 실현하자는
구상이다.

하나의 사이버 정부아래 거대한 경제권을 형성하자는 것이다.

G7은 이를 위해 오는 2000년까지 각 나라별로 추진되고 있는 전자행정
서비스나 통신 금융서비스 등의 표준을 정해 하나로 통일시킬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G7 국민들은 국경 제한없이 행정 통신 상품거래 등
모든 서비스를 자유롭게 이용할수 있게 된다.

예컨대 독일에 지사를 설립하려는 프랑스 기업은 굳이 독일의 해당 지방
정부를 방문하지 않고도 인터넷을 통해 모든 절차를 끝낼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에서는 공무원들도 사이버시대에 걸맞는 관리자가 될 것을
요구한다.

싱가포르는 모든 공무원들이 전자메일을 통해 언제라도 국민과 대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 내용은 인터넷에 공개된다.

부정부패가 사라지고 행정서비스의 투명성이 높아질수 밖에 없다.

1백40여년전 미국의 링컨은 게티스버그에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를 주창했다.

그런 정부는 바로 전자정부에 의해 실체적인 형태로 구현될수 있다.

디지털 광속경제시대에 한국정부가 서둘러야 할 일이다.

그것은 이미 피할수 없는 조류로 다가 오고 있다.

[ 특별취재팀 = 추창근(정보통신부장/팀장)
손희식 정종태 양준영(정보통신부) 한우덕(국제부)
조성근(증권부) 유병연 김인식(경제부)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