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주재 한국대사관이 갑자기 바빠졌다.

한국에서 밀어닥치는 "귀빈"들을 모셔야 하기 때문이다.

대사관 업무가 마비될 정도다.

중앙부처는 말할 것도 없고 지방자치단체 위원회 협회 등 손님도 다양하다.

이유도 가지가지다.

요즘 유행하는 "외국인투자 유치"가 가장 많다.

투자유치하고는 거리가 먼 일들만 하고 가면서도 상당한 "실적"들을 가지고
간다.

더러는 한국상품 판매도 있고 선진문화 견학도 있다.

문제는 해마다 연말이면 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바로 연내에 집행하도록 짜여져 있는 예산을 쓰기 위해 서둘러 "해외출장"을
만드는 것이다.

올해 몫을 다 써야 일한 것처럼 보이고, 그래야 내년 예산을 넉넉하게 따낼
수 있다는 말이다.

"목적"이 이러니 부작용이 없을 리 없다.

느닷없이 저명인사나 고위 관료,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내라고 요구하지만
일이 될 턱이 없다.

투자유치는 고사하고 견학도 쉽지않다.

이러니 관광이나 하다 가는 게 대부분이다.

말 그대로 남은 예산을 써 버리는 것이다.

사전준비가 안돼 있으니 웃지못할 일도 벌어진다.

얼마전에 있었던 한 지방자치단체의 "한국 농산물 판매전"은 "고국상품
사주기"가 돼버렸다.

사전홍보가 안돼 프랑스 사람들은 행사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정도.

애국심 강한 한국상사 주재원과 대사관 직원들이 남은 물건을 사주었다.

그 단체는 한국에 가서는 "한국농산물이 파리에서 대인기였다"고 발표했다고
들었다.

IMF한파로 세상이 달라졌지만 공공조직은 예전 그대로다.

국민들의 세금을 경쟁적으로 써 버리도록 부추기는 예산회계제도도 그렇고
그 제도를 움직이는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예산을 아끼면 상이라도 내려야 할 판이다.

< 파리 = 강혜구 특파원 hyeku@coom.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