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초 어느날 청와대 의전비서관 방에 대통령이 불쑥 들렀다.

"컴퓨터에는 무슨 자료든 다 나오는가?"

모 의전비서관이 대답한다.

"자료가 정리되어 있는 한 다 나옵니다"

"그러면 미국 의회의 회의록도 뽑아볼 수 있나?"

"네, 뽑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 의회 회의록 중에서 코리아(Korea)란 말이 1년에 몇번쯤
나오는지 알 수 있겠군"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비서실 각 방에는 국내업체가 개발한 8비트 컴퓨터가 한대씩 설치돼
있었다.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컴퓨터를 바로 알고 친해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대부분의 비서관들은 낯선 문명의 이기를 외면하고 있었으나 이 의전비서관
은 데이콤의 국제정보통신망을 통해 유명한 데이터베이스인 "다이얼로그
(DIALOG)"에 연결, 자료를 뽑아 쓰고 있었다.

이날 대통령이 컴퓨터의 위력(?)을 이해하고 큰 인상을 받은 결과인지
경제비서관들은 83년 7월 당시로서는 설명과 이해가 쉽지않았던 "국가기간
전산망 계획"을 마련,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행정업무 등을 전산화해 공무원의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작은 정부를
만들고 남는 돈으로 복지국가를 건설한다"는데 명분을 두었다.

이후 행정업무전산화 등 6개 전산화사업이 구체화돼 지금은 정부업무의
상당 부분이 컴퓨터 시스템화됐고, "전자정부"실현도 내다 보고 있다.

그런데 행정기관에서 PC가 잘못 쓰이고 있다 한다.

서울시청 본청 공무원의 PC통신 유료정보검색이 역술 증권 부동산 음악정보
등 대부분 업무와 관련이 적은 것들로 밝혀졌다.

비슷한 실태가 국회 사무처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PC이용 초기에 있을 수 있는 일"로 이해하려는 측이 있지만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으면서 마음은 다른곳에 가 있다"는 비난도 많다.

공무수행에 써야 하는 PC를 사적용도에 활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행정전산화의 원래 목적은 "공무원의 생산성 제고"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했으면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