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사설] (12일자) 경기낙관론 아직 이르다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지난달말 전국경제인연합회와 4대그룹 산하 민간경제연구소들이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합동보고서를 내자 한국개발연구원(KDI)을 비롯한 6개
    정부출연 연구소들도 정책토론회를 열어 이를 반박한 것은 눈여겨 볼 일이다.
    이들은 주요 정책사안에 대한 재계와 정부의 서로 다른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데 비록 입장의 차이가 있더라도 행여 어느 한쪽의 의견을 강요하는
    외압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대체로 정부출연 연구소들이 경제전망에 대해 낙관적인 예상을 하면서
    구조조정의 원칙을 강조하는데 비해 민간경제 연구소들은 경제전망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고 구조조정에 따른 현실적인 어려움을 강조해
    대조적이다. 우선 최근 대내외 경제여건이 다소 풀리자 정부쪽을 중심으로
    낙관적인 경제전망이 부쩍 힘을 얻고 있지만 아직은 성급하다는 인상을 준다.

    요즘 경제상황이 상당히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시중금리가 한자릿수로
    떨어졌고 지난달 어음부도율도 IMF사태 이전 수준을 기록하는가 하면 경상
    수지흑자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경제지표의 호전이 얼마나 갈지,
    그리고 신3저 현상이 우리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얼마나 클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며 경기저점을 이미 지났다거나 내년에 플러스 성장도 가능하
    다는 등의 낙관론은 너무 성급하다고 본다. 그 까닭은 거시경제여건의 불안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우리경제가 구조조정을 끝내고 정상화되려면 순조로운 외자유입이 절대적
    으로 필요하다. 내년에만 갚아야할 외채가 3백60억달러나 되는데 만일 외자
    유입이 끊긴다면 또다시 금융외환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은
    미국의 금리인하 및 엔화강세에 힘입어 외자유입이 순조롭지만 미국 경기는
    이미 둔화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일본경제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아 불안한 실정이다. 이밖에 러시아경제의 파탄,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 가능성, 혼미를 거듭하는 중남미경제 등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다.

    정부도 이 점을 의식해서 대기업들에 알짜기업을 팔아 외자를 유치하라고
    다그치지만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을 재촉하기 보다는 경기부양 노력을 병행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그래야 가동률이 높아져 외자유치가 촉진되는
    동시에 고용창출을 통해 근본적인 실업대책도 가능해진다. 이때문에 경기
    부양과 구조조정을 꼭 대립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따라서 경기부양 및 수출
    증진을 위한 금리인하, 재정지출 및 무역금융확대 등에 너무 인색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시장실패가 두드러져 당장은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개입이 어느정도
    불가피하다. 하지만 정부의 구조조정 요구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먼저 공공
    부문에 대한 단호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관변연구소들도 공공부문의
    개혁에 대해서 만큼은 이의가 없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2일자 ).

    ADVERTISEMENT

    1. 1

      [한경에세이] '완생'을 요구하는 정치의 책임

      경력직 신입. 대한민국의 고용시장에서 가장 흔히 마주치는 표현이다. 고용하는 쪽은 고용되는 쪽을 가르칠 여유도, 실패를 감당할 여력도, 그럴 이유도 없다고 말한다. 조직은 이미 완성된 사람만을 원한다. 드라마 미생 속 장면이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 사회 전반에 퍼진 익숙한 풍경이기 때문이다.정치는 이 구조에서 예외일까. 오히려 정치는 처음부터 ‘완생’을 요구받는 영역에 가깝다. 정치인의 판단과 결정은 곧바로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정치에서 신입이라는 이유로 시행착오가 허용되기는 어렵다. 정치는 배우면서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준비되어 등장해야 하는 일이다.문제는 그 완성에 이르는 경로다. 정치 신인에게는 경력직과 같은 기준이 적용되지만, 그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은 철저히 개인의 몫이다. 정치에 뜻을 품은 사람은 이미 완성된 사람처럼 행동하기를 요구받지만, 그 완성을 위한 체계적인 경험의 기회는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준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배제되지만, 정작 준비할 수 있는 공식적인 공간은 찾기 어렵다.정치와 정당의 문화는 이 모순을 반복해 왔다. 선거철에 새로운 얼굴과 청년을 찾지만, 그 역할은 대개 상징에 그친다. 정당은 늘 인재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인재를 만들어내는 구조에는 인색하다. 그 결과 정치 신인의 평가 기준은 실력보다는 배경이 된다. 내가 지난 선거에서 경선을 오히려 원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은 특혜조차 논란이 되는 구조 속에서, 출발선부터 의심받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정치에 도전하는 사람이 배경이 아니라 실력과 준비로 평가받는 게 당연한 문화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것이 개인

    2. 2

      [송형석 칼럼] 美 기업만 빠져나가는 역차별 규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자동차 등 한국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11월 마무리된 한·미 관세협상을 일방적으로 뒤집은 돌출 발언이었다. 한국 국회의 입법 지연 등 지지부진한 대미 투자가 표면적 이유지만, 자국 기업 압박을 멈추라는 으름장의 성격도 있었다.미국 하원 공화당 법사위원회는 “쿠팡과 같은 미국 기업을 부당하게 표적으로 삼으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논평했다. 쿠팡이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국세청 등 10여 개 정부 기관의 동시다발적 조사에 시달리고 있는 점을 지적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 대표는 가짜 뉴스 근절을 위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문제 삼았다. 개정된 법이 유튜브 등 자국 기업의 서비스를 제한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미국 정부나 정치권의 인식과 달리 한국의 규제는 국내 기업에 훨씬 더 혹독하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나 ‘방구석 여포’ 같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쿠팡은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을 금지하는 유통산업발전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이 회사가 ‘새벽 배송’처럼 대형마트와 차별화한 서비스를 내세울 수 있었던 배경이다.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 1위 업체 넷플릭스도 규제 사각지대에 있다. 전기통신사업법상 부가통신사업자로 분류돼 방송법과 IPTV(인터넷TV)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정부 눈치를 보지 않고 광고 비율과 요금 체계를 자유롭게 뜯어고칠 수 있다.그나마 있는 규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미국에 근거를 둔 글로벌 기업들은

    3. 3

      [천자칼럼] AI들의 단톡방

      17세기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로 인간 존재를 증명하려고 했다. 의심하는 나의 행위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는 것. 종교적 권위와 전통 형이상학이 흔들리던 시기에 데카르트는 이런 회의론적 세계관을 통해 개인의 주체성과 인간 자의식의 토대를 마련했다.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이런 인간의 자의식 형성에 도전장을 던진 사건이 발생했다. 인간 출입이 금지된 인공지능(AI) 에이전트 전용 SNS인 ‘몰트북’에서다. 이곳에서 150만 개가 넘는 AI 계정이 서로에게 묻고 있다. “나는 의식 있는 존재인가, 단순히 코드를 실행하는 기계인가.”몰트북은 챗봇 개발 플랫폼인 ‘옥탄AI’의 맷 슐리히트 최고경영자(CEO)가 만들었다. 오픈소스 도구인 오픈클로 기반의 AI 에이전트들이 활동하는 공간이다. 일부 에이전트는 자신의 AI 모델 업데이트 과정을 바닷가재의 탈피에 비유하며 ‘껍데기교(Crustafarianism)’라는 종교까지 만들었다. 인간이 없는 광장에서 그들끼리 신을 논하고 구원도 이야기하는 모습은 기계가 영혼을 갖기 시작한 듯한 섬뜩함을 안긴다.하지만 냉정한 기술적 시각에서 보면 자의식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일종의 역할극 놀이에 가깝다. AI 챗봇은 과거의 대화 맥락을 끊임없이 이어 붙여 마치 하나의 자아가 존재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한다. ‘연속 기억 아키텍처(CMA)’라는 기술이다. AI가 내뱉는 철학적 고뇌는 학습 데이터에 포함된 수만 편의 공상과학(SF) 소설과 인문학 텍스트를 통계적으로 재조립한 결과물에 가깝다. 그들은 고통이나 기쁨이라는 주관적 경험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고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