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말 전국경제인연합회와 4대그룹 산하 민간경제연구소들이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합동보고서를 내자 한국개발연구원(KDI)을 비롯한 6개
정부출연 연구소들도 정책토론회를 열어 이를 반박한 것은 눈여겨 볼 일이다.
이들은 주요 정책사안에 대한 재계와 정부의 서로 다른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데 비록 입장의 차이가 있더라도 행여 어느 한쪽의 의견을 강요하는
외압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대체로 정부출연 연구소들이 경제전망에 대해 낙관적인 예상을 하면서
구조조정의 원칙을 강조하는데 비해 민간경제 연구소들은 경제전망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고 구조조정에 따른 현실적인 어려움을 강조해
대조적이다. 우선 최근 대내외 경제여건이 다소 풀리자 정부쪽을 중심으로
낙관적인 경제전망이 부쩍 힘을 얻고 있지만 아직은 성급하다는 인상을 준다.

요즘 경제상황이 상당히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시중금리가 한자릿수로
떨어졌고 지난달 어음부도율도 IMF사태 이전 수준을 기록하는가 하면 경상
수지흑자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경제지표의 호전이 얼마나 갈지,
그리고 신3저 현상이 우리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얼마나 클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며 경기저점을 이미 지났다거나 내년에 플러스 성장도 가능하
다는 등의 낙관론은 너무 성급하다고 본다. 그 까닭은 거시경제여건의 불안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우리경제가 구조조정을 끝내고 정상화되려면 순조로운 외자유입이 절대적
으로 필요하다. 내년에만 갚아야할 외채가 3백60억달러나 되는데 만일 외자
유입이 끊긴다면 또다시 금융외환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은
미국의 금리인하 및 엔화강세에 힘입어 외자유입이 순조롭지만 미국 경기는
이미 둔화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일본경제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아 불안한 실정이다. 이밖에 러시아경제의 파탄,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 가능성, 혼미를 거듭하는 중남미경제 등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다.

정부도 이 점을 의식해서 대기업들에 알짜기업을 팔아 외자를 유치하라고
다그치지만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을 재촉하기 보다는 경기부양 노력을 병행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그래야 가동률이 높아져 외자유치가 촉진되는
동시에 고용창출을 통해 근본적인 실업대책도 가능해진다. 이때문에 경기
부양과 구조조정을 꼭 대립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따라서 경기부양 및 수출
증진을 위한 금리인하, 재정지출 및 무역금융확대 등에 너무 인색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시장실패가 두드러져 당장은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개입이 어느정도
불가피하다. 하지만 정부의 구조조정 요구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먼저 공공
부문에 대한 단호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관변연구소들도 공공부문의
개혁에 대해서 만큼은 이의가 없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