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의 ''세계경영''에 대한 평가는 둘로 갈린다.

우리기업이 나아갈 방향이라는 찬사와 실체를 알수 없는 모래성이란
힐난이 혼재한다.

90년대 들어 본격화된 대우의 세계경영은 아직은 ''진행형''이다.

평가 보다는 관심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동유럽에서 확인한 바로는 그곳엔 이미 세계경영의 뿌리가 깊이 내려져
있었다.

눈을 밖으로 돌려 이룩한 성과였다.

대우 세계경영의 발상지 동유럽 사업장의 요즘 모습을 현지르포로
소개한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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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똑똑한 놈 8명만 뽑아서 출장갈 준비해" "어딜 가는데요"
"폴란드다. FSO 인수한다" "언제갑니까" "당장 가야지. 내일 떠나" "예"

대우그룹에 전설처럼 전해오는 얘기 한 토막이다.

대화의 주인공은 김우중 회장과 이선주 대우FSO상무.

시기는 95년초다.

폴란드 자동차회사인 FSO의 민영화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김 회장은
미 제너럴모터스(GM)가 "참전"의사를 내비치자 (주)대우의 정예요원들을
바르샤바로 급파했다.

"창피한 얘기지만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아는 사람이 있나요.

우리 기업이 있나요.

상대는 세계 최대의 GM이지요.

하루 종일 뛰어다니다 일이 안풀리면 술 한잔 마시고 마냥 울었습니다"

이 상무의 눈물은 헛되지 않았다.

대우는 "고용승계" 수용여부를 놓고 망설이던 GM을 제치고 95년11월
FSO를 인수했다.

폴란드 최대 기업의 주인이 된 것이다.

지난해까지 모두 8억3천만달러를 투자했다.

올해 3억3천6백만달러를 더 쏟아넣을 계획이다.

혁신활동도 꾸준히 폈다.

1천3백여 종업원을 부평 대우자동차에 6개월씩 보내 훈련하는 등
교육훈련을 특히 강화했다.

기술력이 뛰어난 엔지니어 양성에도 주력했다.

품질이 눈에 띄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경영혁신활동의 성과로 생산성도 높아졌다.

96년 1인당 10대이던 것이 올해 19대로 늘었다.

영업활동은 그대로 실적에 반영됐다.

올들어 지난 8월까지 거의 모든 부분에서 폴란드 자동차 시장을 장악했다.

경차의 경우엔 티코가 3만5천8백29대 팔려 피아트 3개 모델을 제치고
점유율 40.1%로 베스트셀러카가 됐다.

소형자동차 시장에선 라노스 폴로네즈 넥시아 등 대우FSO의 3총사가
35.5%의 점유율을 차지해 역시 1등을 굳혔다.

준중형차 부문에서도 대우의 누비라 에스페로가 점유율 25.3%로 오펠의
벡트라(11.5%)를 크게 앞질렀다.

중형차도 마찬가지다.

없어서 못파는 상황에서도 레간자가 31%의 시장을 먹었다.

차종이 없는 부문을 모두 포함하더라도 대우FSO는 올해 19만8천대를
팔아 점유율 35%로 폴란드 1위 메이커로 부상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시장진출 3년만의 성과다.

바르샤바 시내를 휘젓고 다니는 티코 레간자 누비라 라노스 등 대우차
운전석에는 새차를 뽑은 자랑스런 운전자들의 선글라스가 빛났다.

대우는 합리적인 가격대이면서도 품질좋은 신차를 원하는 폴란드인의
수요를 읽은 것이다.

그래서 2년간 고용승계라는 불리한 조건을 감내하면서 시장을 선점했다.

대우FSO 석진철 사장은 "폴란드는 등록차량 8백만대 중 50%가 10년 이상
노후된 차량"이라며 "오는 2000년에는 연 80만대의 시장으로 성장할 것"
이라고 말했다.

FSO 뿐만 아니다.

루마니아 클라이오바에 있는 대우자동차루마니아도 똑같은 전략으로
성공한 케이스다.

대우는 91년 프랑스 시트로엥이 자본 철수한 ACSA사를 주목하고 있었다.

수개월간의 투자타당성 조사 끝에 내린 결론은 "먼저 가면 된다.

그것도 아주 잘 된다"였다.

대우는 94년 11월 합작회사를 세웠다.

1억5천6백만달러를 투자해 지분 51%를 확보했다.

올 상반기 동안 이 회사의 루마니아 시장 점유율은 대수 기준 17%,
금액기준으로 40%나 된다.

대수 기준으로 점유율이 "저조한" 이유는 루마니아의 국민차라고 할 수
있는 "다치아" 때문이다.

다치아는 국영회사에서 만드는 3천~4천달러 수준의 저가 차량이다.

"세번은 고쳐야 쓸 수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품질도 저급이다.

현재 보급된 다치아 가운데 50%가 10년 이상 노후된 차량이다.

대우자동차루마니아가 월평균 소득이 1백50달러가 채 못되는 루마니아에
뛰어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치아가 생산 중단될 경우 수요는 그야말로 "폭발"할 것이 분명해서다.

정부 보조로 다치아가 계속 생산된다고 하더라도 2000년부터는 환경규제에
걸려 어려워진다.

다치아가 환경수준을 맞추려고 추가 투자를 할 경우 가격경쟁력은 대우가
높아진다.

수입차가 들어올 가능성도 거의 없다.

수리와 애프터서비스에서 대우가 이미 경쟁력을 높여 놓았다.

대우자동차루마니아 관계자는 올 내수 3만대,수출 1만5천대인 판매실적을
2000년까지 9만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동구에 진출한 대우의 자동차 회사들은 이처럼 무한한 가능성의 시장을
선점하는 전략에 승부를 걸었고 이미 과실을 따먹고 있다.

그렇다고 대우FSO와 대우자동차루마니아가 현지나 인근 국가의 수요만을
보고 진출한 것은 아니다.

비전은 더 장기적인 데 있다.

대우는 EU가 조만간 한국에도 자동차 수출쿼터제를 적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국내에서 만들어서는 유럽에 팔 수 없는 시대가 곧 온다는 것이다.

현지에 진출하면 더 좋은 것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되는 날이 곧 온다는
것이 대우 세계경영이 주는 또 다른 메시지다.

< 바르샤바= 권영설 기자 yskw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