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전력시설 등의 건설공사에서 시공력을 인정받고 있는 H건설은 지난
5월 큰 낭패를 당했다.

이 회사는 공사수주를 위해 3년 가까이 공을 들여온 필리핀 민다나오
항만건설공사의 입찰에 참가하지도 못한 것.

ADB와 OECF자금으로 추진되는 이 프로젝트는 이 지역에 컨테이너선 2대를
동시에 정박시키는 항만을 건설하는 것으로 H사는 이중 2천8백만달러 규모의
통신 및 전력공사 수주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5월에 실시된 입찰에 참가하기 위해 프랑스계 은행에 입찰
보증을 신청했다가 뜻밖의 난관에 부딪쳤다.

은행측이 입찰액의 1.5%에 달하는 고율의 보증수수료를 요구하는 바람에
입찰보증서를 준비하는데 실패, 입찰에 참가조차 못한 것이다.

1년전만해도 이 회사는 입찰보증 은행에 0.2~0.3%의 수수료를 지불해 왔다.

S건설은 지난 6월말 아랍에미리트에서 석유플랜트 공사를 따놓고도 3개월째
공사계약을 하지 못해 속앓이를 하고 있다.

발주처인 이 나라 에너지부가 우리나라의 외환사태로 인해 외국계은행과
국내 S은행의 "공사이행보증"을 동시에 받아올 것을 요구해서다.

이 회사는 미국계 은행과 한국의 S은행에 공사이행보증을 신청했으나
미국은행은 총 공사비 3천1백만달러의 1.8%에 달하는 수수료를 요구하고,
국내 S은행은 아예 이를 거절한 것.

이처럼 해외건설업체들이 사면초가의 위기에 처해있다.

주력시장인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의 환란과 국가
신용도 및 은행신용등급 하락이 주원인이다.

올들어 동남아시장 발주물량이 급격히 위축된데다 국가의 신용도 추락으로
공사이행보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바람에 딸수있는 공사도 놓치는 등
수수실적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9월말 현재 국내 건설업체가 해외에서
따낸 건설공사량은 모두 77건 24억1천1백만달러.

이는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렸던 작년 동기(97억2천7백만달러)의 24.8%에
불과한 실적이다.

특히 동남아 지역 수주량은 지난달까지 고작 10억3천4백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63억3천6백만달러의 16.3%에 그쳤다.

국가를 부도위기에서 건져내고 비약적인 경제발전의 견인차임을 자임하며
건설신화를 창조해온 해외건설의 불씨를 지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관련업계는 이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프로젝트파이낸싱 형태의 사업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프로젝트파이낸싱은 "프로젝트의 사업성"을 담보로 국제금융기구나 일반은행
개인자본주 등이 사업자금을 제공하고 사업종료 후 일정 기간동안 발생하는
수익을 지분율에 따라 투자자들이 나눠갖는 건설관련 금융기법이다.

이 시점에서 프로젝트파이낸싱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것은 국내 건설업체들이
시공능력과 기획력을 확보한데다 고부가가치형 투자개발사업 경험이
풍부해서다.

또한 프로젝트파이낸싱 형태의 사업은 대부분 국제기구 은행 등이
신디케이트를 구성해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에 강력한 시공경쟁력을 바탕으로
지분투자식의 사업참여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또 하나의 매력은 시장규모가 광범위하다는 점이다.

최근 주춤해지긴 했지만 동남아지역의 경우 한해에 평균 50건이상의 각종
공사가 프로젝트파이낸싱 형태로 추진돼 왔다.

이머징마켓으로 각광받는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지역 국가들도 "오일달러"를
앞세워 연평균 70건에 가까운 각종 개발사업을 프로젝트파이낸싱으로
추진하고 있다.

시장이 확대되면서 이를 겨냥한 펀드사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내수부진에 따른 전후 최대의 불황속에서도 일본은 자국 건설업체들의
해외개발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노무라 미쓰비시중공업 등이 중심이 돼
민간펀드를 만들어 사업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 최근 2~3년사이에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지역에서도 10여개의 민간펀드가
생겨나 새로운 시장을 넘보고 있다.

그러나 프로젝트파이낸싱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선결해야할 과제가 산적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프로젝트파이낸싱은 사업성 자체를 보고 자금을 일으키는 것이지만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만 않다.

건설업체들의 부채비율이 타업종에 비해 높은 등 재무구조가 안좋아서다.

이것이 현재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고 있다"

기업은행 투자금융부 이희달 팀장의 말이다.

외국계 은행들도 IMF이전에 비해 국내 건설업체에 인색한 반응을 보이기
일쑤다.

이들은 지급보증을 선다해도 한결같이 신용도가 우량한 H, S, K 등 몇몇
은행으로부터 별도로 지급보증을 받도록 단서를 달고 있다.

금융기관들이 국내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투자를 꺼리는 마당에 해외에서
하는 사업에까지 지급보증을 서기는 어려운게 현실이다.

이같이 해외 은행의 태도가 급변한 것은 우리 경제 형편이 좋지 않은데다
결정적으로 건설업체들의 높은 부채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관련 전문가들은 건설업체의 경우 재무구조 개선이 급선무라고 한결같이
지적한다.

또한 금융기관및 국가신용 등급 상향조정도 시급한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이와함께 국내건설업체들이 설계 기획 감리 등 고부가가치 분야는 물론
교량 항만 발전 등 특정 시공분야에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