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경제의 향방을 가름짓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역시 일본경제다.

일본이 강력한 내수부양과 금융개혁을 추진해 국제경제계의 신뢰를 얻으면
아시아는 더이상 큰 위험을 겪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일본의 개혁과 경기회복이 지지부진해 엔화가 더 추락한다면 상황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위안화 절하도 불가피해지는 상황이 되고 아시아는 "제2의 환란"으로 치닫게
된다.

결국 일본 새 정권의 자세가 아시아의 장래를 쥐고 있다는 얘기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시점에서는 일본정부가 지금까지보다는 개혁과 내수회복
을 더 강력하게 밀고 나갈 것으로 보인다.

오부치 게이조 외상이 자민당의 신임총재가 된 지난 24일 일본시장이 그것을
확인해 주었다.

선거전까지만 해도 오부치가 총재에 당선될 경우엔 엔화가 곧바로 약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전망됐으나 선거과정에서 경제개혁에 대한 의사를 충분히
밝힌 덕에 엔화는 회복세를 보였다.

어느정도 약세가 이어지겠지만 큰 폭으로 하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국제금융가의 중론이다.

실제로 일본의 새 정권은 적어도 하시모토 때보다는 개혁과 경기회복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하시모토 정권이 물러난 것도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국민의 문책 때문이었고
일본은 세계경제계로부터 "일본발 세계공황"의 주범이 될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무디스는 일본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위협, 새 정부의 할 일을 분명히 적시해 주기도 했다.

오부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자민당의 총재가 되고 후임총리가 되더라도
달리 해볼 길이 없는 게 일본의 형국이다.

다른 후보들도 그랬지만 오부치는 경제회복에 최우선을 두겠다고 강조했다.

내수부양을 위한 대규모의 감세와 재정구조개혁법동결(재정적자 축소계획
보류)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재정적자를 줄이겠다는 전임정권의 공약을 뒤로 미룸으로써 새정권은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우선 경제를 살린 다음에 재정구조를 개선시켜야 한다는 시장의 주문을
수용한 것이다.

하시모토때 4조엔 정도로 검토하던 영구감세(소득세와 법인세율 인하 등)
규모는 6조엔 이상이 되도록 하겠다고 분명히 했고 10조엔 이상의 추경예산
편성계획도 밝혔다.

미국 등이 요구하고 있는 금융개혁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만들어진 "금융재생토털플랜"을 바탕으로 부실금융기관과 부실채권
정리에 박차를 가한다는 게 오부치의 방침이다.

부실경영기관이나 경영자에게는 확실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제 일본의 새 정부가 얼마나 강력한 의지로 개혁에 나서느냐가 관건이다.

오부치 체제가 아직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이기
때문에 후속조치는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부실금융기관을 서둘러 정리하고 소득세와 법인세율 인하폭등을 구체적으로
밝히면 상황은 호전될 수 있다.

이미 부분적으로 시행에 들어간 16조엔 규모의 경기대책도 가을께부터는
조금씩 효과를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물론 불협화음이 해소되지 않고 개혁이 말에 머문다면 엔화추락은 막기
어렵다.

하지만 일본의 상황이 막다른 골목에 몰린 만큼 성의를 보일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 도쿄=김경식 특파원 kimks@dc4.so-net.ne.jp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