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구 < 증권 부장 bklee@ >

증시가 오랜만에 회생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가가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종합주가지수 340선을 훌쩍 뛰어넘었다.

투자자들에게는 가뭄에 단비오듯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주가가 오름세로 돌아선 것은 금리가 안정세를 보이고 원화값도 회복되는
등 여러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역시 외국인들이 발길을 되돌려 주식
매수에 나선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국인들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매도 우위를 유지했으나 이달들어선 1천억원
어치 이상을 사들이고 있다.

이번에 다시 입증됐듯 외국인들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이들이 주식을 사면 주가가 오르고 팔면 주가가 내리는 양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관리체제로 떨어진 직후만해도 이들의 움직임은 심리적
영향으로서의 측면이 컸다고 할 수 있지만 요즘은 어느모로 보나 엄청난
파워를 부인할 수 없는 형편이 됐다.

현재 외국인들이 보유한 주식은 싯가기준으로 20%선에 달한다.

30%를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대주주들의 지분을 빼고 생각한다면 유통시장
에서 미치는 파워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증시전체에서 차지하는 매매비중도 하루 평균 10%에 이른다.

개별기업차원에서도 33%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종목만 40개를 넘는다.

정관변경 등 회사의 주요경영활동을 저지할 수 있는 힘을 확보했다는
뜻이다.

이처럼 커진 위상을 반영해 외국인들이 실제 상장기업들의 경영활동에
제동을 거는 케이스도 심심찮게 눈에띄게 됐다.

어떤 기업에는 회사의 결정사항에 반대하면서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기도
하고 어떤 기업에는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을 이사로 선임토록 요구하기도
한다.

얼마전에는 한 그룹이 생존을 걸고 추진하는 합병에 반대하면서 주식매수
경쟁을 벌이다 비싼 값에 되파는 사실상의 그린메일에 나서 증권가를 떠들석
하게 하기도 했다.

나라 전체 입장에서 본다면 일부 기업에 외국인의 영향력이 증대되는 것이
문제될 것은 없다.

설사 회사전체가 넘어가더라도 그리 대단한 일이 못된다.

외국인이 기업을 사들이더라도 생산활동이 계속되고 고용이 창출된다면
나름대로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바는 크기 때문이다.

또 글로벌 경제시대에는 어느나라에나 외국인 기업이 상당수 있고 그것이
개방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정작 문제는 이제부터다.

외국인들이 다시 주식매수에 나선 이상 이들의 영향력은 앞으로도 더욱
증대될 것이 불을 보듯 훤하기 때문이다.

시장이 본격 개방된지 얼마되지 않아 이미 싯가총액의 20%를 장악했으니
이를 30~40%로 늘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유통주식을 기준으로 한다면 절반이상이 이들의 손에 장악되는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럴경우 대부분 상장기업들의 경영은 이들에 의해 절대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영업양수도 등 결정적인 경영현안에 제동을 거는 것은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경영진까지 이들의 손에 의해 교체될 수도 있다.

주식시장의 주가흐름 역시 지금보다 훨씬 더한 강도로 외국인들에 의해
좌우되게 된다.

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주가의 급등락을 초래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제2의
금융위기를 부를 수도 있다.

이들이 한국의 미래를 비관해 대거 주식을 팔고 달러로 바꿔 떠날 경우
"외국인발 금융위기"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외국인들이 다시 들어온다고 해서 한국의 미래가 결코 밝은 것만은 아니다.

미리부터 경각심을 갖고 기업들도 나름대로의 대비책을 세워둘 필요가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