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적으로 성장하던 아시아 국가들이 위기를 맞으면서 많은 논제를
던져주고 있다.

과연 아시아적 가치는 무조건 나쁜 것인가, 미국식 경제를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는가 하는 점 등이다.

도널드 에머슨 위스콘신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한국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고 대만과 홍콩은 위기를 비켜가는 등 중국문화권 동북아
국가들의 위기대처 능력은 아시아적 가치의 의미를 재론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에머슨 교수가 포린어페어지 최근호에 기고한 "아시아 경제모델은
도태됐는가"라는 글을 소개한다.

< 도쿄=홍찬선 기자 in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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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아시아 금융위기는 동아시아경제가 영속적으로 번영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통념을 무너뜨린 사례다.

이번 위기에서 아시아인들은 어떤 정치적 교훈을 얻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정치적 자유는 건전한 경제발전(performance)에 어느정도 필요한
것인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아니면 이미 도태됐어야 할 아시아적 가치, 즉 유교에 대한 신봉이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인가하는 문제다.

아시아 위기는 "분열론"을 약화시키는 반면 "수렴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있다.

분열론이란 외국인이 정치 경제 문화면에서 비미국형 모델을 주장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미국이 지배하는 상황에 도전한다는 논리다.

이에반해 수렴론은 미국의 뛰어난 방법을 받아들여 미국이외의 나라에서
미국의 우위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아시아 위기는 세가지 측면에서 분열론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첫째, 금융위기는 일본의 계열이나 한국의 재벌같은 대기업집단과
정부관료의 협조를 기반으로 하는 동아시아 모델(또는 일본형 경제성장
모델)에 대한 신뢰성을 무너뜨렸다.

아시아 시장의 붕괴는 동아시아 "개발형국가"에 감춰져 있던 "족벌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를 잉태시켰다.

둘째, 아시아위기는 "문명의 충돌" 가능성을 떨어트렸다.

계속 하락하는 성장률과 급증하는 손실로 인해 서양에 도전하는 데 필요한
자원과 자신감을 없애버린 때문이다.

셋째, 이번 통화위기는 도쿄를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워싱턴 중심의
남북아메리카, 브뤼셀 중심의 유럽이라고 하는 3극모델을 무너뜨렸다.

이에따라 97년 아시아위기는 시장경제자본주의라는 미국모델의 우위성을
실증한 것이라는 주장이 미국에서 일고 있다.

지난 89년의 베를린장벽 붕괴가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는 미국 정치모델의
유효성을 증명한 것처럼 말이다.

아시아적 가치의 무력함이 동아시아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는 것을
방해했다는 이같은 시각에는 문화적 우위와 남의 실패를 즐거워하는 감정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시아인들이 위기를 경험했다고 해서 미국모델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은 그릇된 것이다.

첫째 미국모델을 "의무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것과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사"는 다르다.

세계의 정책결정자들은 "시장경제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마거릿
대처 전영국총리)"는 말에 동의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해서 시장경제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

그렇게 매달린다고 해서 시장경제의 질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일부 아시아인들은 규제없는 시장과 그것이 수반하는 취약성및
불안정성을 대신할 다른 방법을 모색할 지 모른다.

둘째, 미국모델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월스트리트저널지의 같은 면에서도 어떤 전문가는 세율인상과 세출삭감을
주장하는 반면 다른 사람은 정반대의 처방전을 제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아시아 위기 처방전에 대해서도 서머스 미국 재무부
부장관은 "아시아 재생에 매우 중요하다"고 옹호하는 반면 제프리 삭스
하버드대학 교수는 "IMF처방전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셋째, 미국이 위기대응에 IMF를 이용하는 것 자체가 이론과 행동, 즉
시장경제 이데올로기와 실현 가능한 구제책 사이의 모순을 의미한다.

IMF에 참여하는 것은 기업이 아니고 국가다.

그러나 아시아의 위기는 공적 채무가 아니고 은행과 기업 등 민간부문의
채무에 의해 일어났다.

IMF개입의 본질은 정부대 정부이며 어디까지나 "국가가 경제의 주체"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더우기 IMF의 회의와 합의는 불투명하다.

이것은 아시아의 회계관행에 대해 투명성을 요구하는 주장과 일치하지
않는다.

넷째, 97년8월 IMF의 태국지원 패키지에 미국은 직접 돈을 내지않아
동남아시아인들의 불신을 샀다.

아시아인들은 IMF에 추가 지원을 승인하도록 의회를 신속히 설득하지
못하는 클린턴 정부의 무력함을 지적하고 있다.

IMF의 조건이라는 것은 실질적으로 미국모델인데 클린턴 정부의
무력함때문에 IMF 조건을 받아들이는 나라들은 미국에 그리 고마워하지
않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는 경제회복에 유효한 것인가.

세가지 성공과 한가지 실패가 이에 대한 판단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위기 이후 대만은 꿋꿋이 버티고 한국과 태국은 회복세로 돌아서고
있는 반면 인도네시아는 붕괴했다.

대만 한국 태국은 약간씩 다르지만 자유민주주의로 잘 이행했다.

인도네시아는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는 경제회복의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대만 홍콩 한국 등 역동적으로 경제회복을 보이는 나라는 역사적으로
볼때 중국의 영향이 크다.

따라서 이번 위기를 겪으면서 아시아적 가치가 경제적 성공을 보증한다는
신뢰를 크게 떨어뜨리긴 했으나 아시아적 가치의 하나인 유교관을 다시
부활시킬 가능성도 있다.

동북아시아(일본 한국 대만 홍콩)가 동남아시아(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보다 뛰어난 회복력을 나타내면 낼수록 아시아적 가치는 다시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은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장을 "임명"할 권한이 없다.

하지만 이사를 임명할 수 있으며 이사들이 의장을 선출한다.

게다가 이사의 임기는 최장 14년이나 된다.

대통령보다 훨씬 길다.

이런 구조는 어떤 의미에서 매우 비민주적이다.

은행제도와 통화감독 책임을 선거에서 선출된 정치가와 그들이 임명한
사람들에게 맡기는 것은 옳지 않다.

동아시아 각국은 97년의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98년의 동아시아는 변모하고 있다.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그것은 "아시아의 미국화"는 아닐 것이다.

이 지역에 대해서는 "희망적 관측"을 할 것이 아니라 "현실적 사고"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아시아가 가면이 벗겨진 기적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로 향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