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전 부임한 한 외국은행 서울지점장은 아침 일찍 출근했다 5시30분 전에
서둘러 퇴근한다.

"무시무시한" 러시아워를 피해 운전하기 위해서다.

외국인이 아니더라도 한국에서 운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도로교통법에는 엄연히 "모든 차는 다른 차를 앞지르고자 할 때 앞차의
왼쪽으로 통행해야 한다"고 돼 있지만 오른쪽으로 추월하는 건 물론이요,
깜빡이 없이 갑자기 들어오는 차도 부지기수다.

인터체인지 진입로가 2차선인줄 뻔히 알면서도 갓길로 달려 4차선 5차선을
만든 다음 제 차선으로 온 차를 밀어부치는 경우도 흔하다.

시속 100km 이상으로 달리면서 앞차를 토끼몰듯 2~3m 차이로 뒤쫓는가 하면
전화나 면도 화장을 하며 운전하다 급브레이크를 밟는 운전자도 있다.

다른 나라에선 볼 수 없는 1차선 정체현상은 좌회전이나 U턴차선으로 가던
차가 직진차선으로 파고 들어 생긴다.

주한외국인들이 한국의 교통문화 점수를 평균 40점, 운전자의 교통법규준수
정도는 24점밖에 안준 것도 무리가 아닌 셈이다.

버스나 택시가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법규를 위반해도 처벌하지 않는 관행
때문이라고는 응답은 낯 뜨겁다.

교통개발연구원은 선진국 수준의 교통질서를 유지할 경우 20%이상 교통
체증을 줄여 연간 3조7천억원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7월 자동차 1천만대 시대를 맞았다.

우리나라 운전자의 연간 교통질서 위반 횟수는 일본의 8배가 넘는다.

교통사고가 우리나라 성인에겐 세번째, 19세이하에겐 첫번째 사망원인이라는
사실은 교통질서 준수가 비용절감 문제만이 아님을 설명하고도 남는다.

영국을 비롯한 교통선진국에선 운전기술보다 안전과 양보, 보행자 보호에
힘쓰는 것이 인정돼야 면허증을 내준다.

교통문화가 엉망인데 대해 흔히 우리사회에 결과만 좋으면 방법은 문제되지
않는다, 법과 질서를 잘 지키면 뒤처지기 십상이다라는 사고방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그재그로 마구 달려도 장애물이 나타나면 한참 전에 따돌린 초보
운전자와 나란히 서게 되는 것이 운전이다.

어렵고 급해도 차례를 지키고 정도를 좇는 정신을 기를 때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