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에서 무역중개업을 하는 독일인 마이클 슈나이더(38)씨.

그는 지난 4월 말 자카르타 사무실을 폐쇄했다.

슈나이더씨가 새 사무실을 마련한 곳은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두시간
정도 걸리는 싱가포르 중심가 레플스 퀘이.

사무실 임대료도 비싸고 인건비도 인도네시아의 3배 가까이 되지만 그는
지금 아주 만족스럽다.

"사무실 유지비용이나 근로자 임금은 물론 인도네시아가 싸다.

그러나 정치적 요인이나 그외 사회.경제적 인프라를 고려하면 오히려
싱가포르가 낫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비단 슈나이더씨뿐만이 아니다.

동남아지역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는 미국.유럽.일본계 기업들은 거의 모두
싱가포르에 거점을 둔다.

생산공장이 인도네시아나 베트남, 미얀마 등에 위치하고 있을지라도 본사는
싱가포르를 고집한다.

싱가포르가 동남아의 투자 요지로 꼽히는 이유는 완벽에 가까운 인프라
때문이다.

교통, 통신, 물류 등 눈에 보이는 인프라가 뛰어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구자명 LG그룹
동남아본부장)이다.

서구적 시민정신, 낮은 언어장벽, 청렴한 공무원 등이 그것이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눈여겨 볼 대목은 바로 시스템을 세우고 유지해 나가는
정부의 역할.

외국인 투자유치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산업에 대해선 가만히 앉아서 투자를
기다리지 않는다.

면밀하게 계획된 프로젝트에 따라 투자기업을 찾아 나선다.

이른바 "기획유치"다.

지난 96년 설립된 TECH사(반도체제조업)는 그 전형적인 예다.

우선 경제개발청(EDB)이 반도체공장 유치를 위한 사전계획을 수립한다.

"유치기업에 어떤 인센티브를 줄 것인가", "공장 부지는 어디로 할 것인가"
등이 종합적으로 디자인 된다.

이를 토대로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 다국적 기업들을 대상으로
프리젠테이션이 이뤄진다.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필요하다면 정부 산하기관이 일정지분을 참여하기도 한다.

투자기업엔 리스크를 줄여주며 정부로선 수익성 좋은 미래사업에 미리
투자하는 셈이다.

해외에 제2,제3의 싱가포르를 건설한다는 쑤조우프로젝트나 우시프로젝트
등도 모두 이렇게 추진되고 있다.

"외국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정치적으로 불안한 것도 비용이고, 영어가
안통하는 것도 비용이다. 한국기업이 외국에 투자할때도 마찬가지다"

민병식 LG그룹 동남아지역본부이사는 싱가포르의 국가경쟁력을 한마디로
"시스템 경쟁력"이라고 단언한다.

나라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적인 시스템처럼 움직인다는 뜻이다.

마치 세밀하게 설계된 한장의 반도체 회로도를 연상시킨다는 것.

반도체의 경쟁력은 미세한 선폭 구석구석까지 전류가 잘 흐를수 있도록
설계하는 능력에 달려있다.

투자유치의 총사령부인 정부가 전류를 흘려보내면 중앙은행은 물론
민간기업, 노조, 일반 국민들까지 모두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이견이 생기면 즉시 조정하고, 원칙에 입각해 최적을 산출해 내는 일련의
과정이 이가 잘 맞는 톱니바퀴와 같다.

그렇다고 정부가 무조건 일관된 원칙만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투자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예로 들면 신청조건만 만족시켰다고 그대로
주는건 아니다.

자국의 경제적 이익과 결부해 사안별로 인센티브가 제공된다.

투자규모가 크거나 첨단 미래산업일 경우 규정을 뛰어넘는 인센티브가
주어지기도 한다.

"탄력적인 사업추진방식이 무원칙한 일관성보다 훨씬 효율적"(경제개발청
대변인 메리사 웡)이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이 상황변화를 인식했을 때 정부가 그에 미치지 못하면 더 큰
의미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없다"는 이광요 전총리의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신중하게 결정된 정책의 일관성이 지켜지되 의사결정구조는 신축적인
셈이다.

한국의 외환위기가 절정에 이르렀던 지난해 12월.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은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달러가 아니라
리더십"이라고 지적했다.

관행과 제도가 국민의 행동을 제약하고 또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면
이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동력은 바로 리더십을 끌어내는 "시스템"이란
사실을 싱가포르는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

< 싱가포르=이의철 기자 ec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