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체제변화가 요구되는 급격한 환경변화의 시대이다.

그 중의 하나가 지난 89년 나타난 공산주의의 붕괴이다.

그 이후 세계는 규제와 보호의 사회주의 사상이 퇴조하고 자율과 경쟁의
자유주의 사상에 기초를 둔 시장경제원칙이 지배하고 있다.

아시아 경제가 금융.외환위기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는 시장경제
원칙을 지키지 않고 이해집단의 정치적압력에 굴복하여 도산에 처한 기업을
구제해 왔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들을 보면 정부의 규제와 간섭이 많았다.

우리는 12.12 증시부양정책으로 투신사가 어려워졌고 김영삼 정부 초기에
돈을 푸는 경기부양정책에 의해 경제를 보다 건실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다.

기아 제일은행 등의 처리를 시장경제원칙에 따라 했다면 우리가 IMF를 면할
수도 있었지 않았겠느냐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동안 우리는 개혁을 한다고 소리는 높였지만 중소기업을 제외하고는 아직
제대로 퇴출된 기업이 없다.

협조융자 화의 법정관리 등으로 기업을 어떻게든지 살리려고 했지 매각
합병 정산으로 기업을 퇴출시키지는 못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새한종금 인수 등에서 보듯 시장경제원칙을 벗어나는 일을
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기업구조조정에 앞서 금융구조조정을 먼저 하겠다고 한 것은
개혁의 방향이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만 구조조정과 관련해
지금까지 내놓은 정책은 모두 시장경제원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시장경제원칙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정부가 기업경영에 간섭하지 않고 손을 떼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새 정부가 내놓은 기업정책은 모두 기업을 압박하는 정책이다.

빅딜, 계열사정리, 부채비율 2백%, 최근에 나온 기업구조조정계획, 부실
기업판정위원회 등은 기업들을 억압적 분위기로 몰아넣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이다.

지금 상황에서 어느 기업이 자기 살기 위한 구조조정을 정부가 하라고 해서
하고, 내버려두면 하지 않겠는가.

지금 정부가 하는대로 죽는 기업 살리고 살아있는 기업 때리기를 하면
경제는 살아날 수 없다.

정부는 지금 할 일은 안하고, 해서는 안될 일을 하는 꼴이다.

지금 정부는 어떻게 하면 손을 뗄 수 있는가를 연구해야 하고 부득이한
경우에만 개입해야 한다.

지금 시장이 작동되지 않는 곳은 금융이다.

시장이 작동한다는 것은 자율과 책임의 원칙이 지켜지는 것을 말한다.

지금 기업은 시장경제원칙이 지켜질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개입이 필요없다.

시장이 작동할 수 있는데도 정부가 나서서 일을 처리하게 되면 개별기업의
특수성을 고려해 다양하게 처리돼야 할 기업구조조정문제를 획일적으로
처리하게 되고 로비 등 정치적 영향을 받게돼 좋지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러나 금융은 문제가 너무 복잡해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결여돼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책임을 질 수 없는 상황이다.

금융산업은 1백25조원의 부실채권에 자본금은 22조원밖에 되지않기 때문에
완전 자본 잠식상태에 있어 부실채권을 해결할 능력도 없고 예금자 보호에
대해 책임질 수도 없다.

특히 은행내부에는 부실채권이 발생한다고 잠못자는 사람도 없다.

이는 물론 오랜 기간의 관치금융의 결과이다.

한마디로 완전히 책임정신은 실종돼있고 정부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다.

막대한 재정자금이 투입돼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개입해 해야 할 일은 자율적 능력을 갖추고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주인있는 금융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노르웨이 등의 구조조정에서와 같이 모든 은행에 대해 우량채권과
부실채권을 분리하여 우량.불량은행으로 나누고 합병 매각 등의 방법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우량은행 불량은행으로 나누면 많은 원매자가 나타나는 것이 외국의
경험이다.

이때 외국금융기관의 참여를 장려해 한국금융산업에 외국자본뿐만 아니라
외국의 노하우가 대대적으로 유입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금 구조조정에서 금융이 먼저냐 기업이 먼저냐 하는 것은 좋은 질문이
아니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곳이 어디냐를 질문해야하고 정부는
경제개혁을 통해서 시장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고 손을 떼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가장 조심해서 다루어야 할 말은 정부주도 경제개혁이라는
말이다.

노부호 < 서강대 교수 / 경제학 boohorho@ccs.sogang.ac.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