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김성령(33)씨는 IMF한파이후 두가지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하나는 신문스크랩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문마다 가장 싼곳을 앞다투어 소개하고 있어 잘만 모아두면 훌륭한 쇼핑
가이드북이 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슈퍼에 가기전 반드시 쇼핑리스트를 만든다.

그냥갔다간 꼭 계획하지 않았던 물건을 사게 되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난 반상회때 자신의 이런 절약법을 소개한 뒤로 동네에서 "이코노
주부"란 별명이 붙었다.

IMF체제 이후 온국민이 김씨같은 짠돌이 주부로 변하면서 소비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IMF한파가 불기 시작한 지난해 4.4분기이후 명목소비지출이 사상 처음으로
0.8% 줄어들었다.

나라가 외국빚으로 연명하는만큼 소비가 늘었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소비패턴도 알뜰소비로 급격히 바뀌어 소비의 리스트럭처링시대가 오고
있다.

실업대란과 직장마다 꼬리를 물고 있는 급여삭감사태는 소비자에게 물건
하나라도 경제적으로 구입하는 "이코노쇼핑"을 강요하고 있다.

실업과 급여삭감만이 아니라 모든 거시경제변수가 소비위축을 불러 일으키는
쪽으로 구조화되고 있다.

실직 급여삭감에 따라 명목소득이 감소하고 10% 내외로 예상되는 물가상승률
이 실질소득감소를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다 미래소득이 줄어들 것을 염려한 소비자들이 금고에 돈을 놓아
두고 "무조건 안쓰고 보자"로 돌아서고 있다.

내핍형소비가 시작된 것이다.

과소비 거품소비는 이제 고어사전에나 들어가야 할 운명처럼 보인다.

여기에다 부동산시장위축과 주식시장침체로 자산소득은 뚝 떨어지고 사회가
점차 투명해지면서 불로소득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처럼 소비형태가 절대량 감소뿐아니라 질적 측면에서도 새로운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소비혁명은 가격민감도에서 나타난다.

"그거 몇푼이나 한다고..."에서 "단돈 10원이라도 싼것"으로 바뀌었다.

과거처럼 나도 부자라는 뉴리치(New Rich)현상은 사라지고 너도나도 가난한
뉴푸어(New Poor)계층에 자발적으로 편입되고 있다.

"감성소비에서 이성소비로 소비구조가 리스럭처링되고 있다"는게 박영배
신한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의 진단이다.

소비만 리스트럭처링되는게 아니라 생활자체도 구조조정되고 있다.

아파트평수를 줄이고 차를 파는가하면 교양 오락같은 소득변화에 민감한
소비항목들은 가계부에서 지워버렸다.

가격파괴형 할인점이 번성하고 온갖 업태마다 IMF형 바겐세일을 내세운다.

백화점이 할인점으로 바뀌고 싸구려 물건이 백화점의 으리으리한 매장을
채우고 있다.

고급호텔음식점도 "IMF탕"을 메뉴로 준비한다.

TV나 신문은 모든 편성제작기준을 80년대 기준에 맞추어 복고풍으로 사회
분위기를 몰고가고 기업들도 덩달아 이미 시장에서 전역한 "예비역 상품"들
을 선보이며 가난한 시절의 아린 기억들을 쏘삭거리고 있다.

주부들은 신문 방송등 각종 정보를 뒤지며 좀더 싼데를 찾아 눈을 비비고
있다.

소비자들이 나날이 지적인 소비자로 변신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직도 일부 계층의 과소비현상은 여전하다.

우선 고소득자나 부자들은 한때 눈치소비를 하더니 최근에는 보란듯이
과시소비에 나서고 있다.

소비의 부익부 빈익빈현상이 심화되고 있고 IMF가 끝나면 이같은 현상은
더욱 심해질것 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명퇴자금을 챙겨 주머니 두둑한 퇴직자들이나 몰락하는 중산층도 소비의
하방경직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옛날 쓰던 습관을 아직도 못버리고 있다.

또 자리보전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탈 스트레스증후군"에 휩싸여 있다.

"화풀이쇼핑"을 하는 주부처럼 스트레스를 나만의 자가용공간에서 푸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이것이 최근 도로상의 차량증가현상을 설명하는 심리적 원인이라는게
삼성경제연구소의 분석이다.

저소득자들도 알뜰소비에 나서지만 아직은 지적인 소비자가 못되고 있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소비정보 때문이다.

어디가 싼지 제대로 모르고 있다.

알뜰소비도 요령이다.

잘 장만된 소비정보는 바로 돈이다.

덜쓰는 것도 훌륭한 재테크다.

무조건 안쓰는 것보다 합리적으로 잘쓰는 "똑똑한 소비"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무조건 쓰지 말자"는 소비파괴는 곧바로 소득감소라는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가장 싸게 사는 노하우를 몸에 익혀야 한다.

이런 소비의 과학화가 바로 IMF시대가 요구하는 소비자경제학이다.

< 안상욱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