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들어 한반도에는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녹이는 해빙의 봄바람이
불고 있는 느낌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사와 3.1절 경축사에서 남북 기본합의서 이행을
위한 특사교환과 정상회담을 제의한데 이어 민관차원의 대북지원조치와
경제협력 제의가 잇따르고 북한 역시 유화적 제스처를 보임에 따라
남북관계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어제 베를린에서는 북-미 고위급회담이 열리고 오는
16일에는 제네바에서 한반도문제 4자회담 2차 본회담이 시작되는 등
국내외에서 한반도문제를 풀기위한 노력이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고 있어
관심을 끈다.

우리는 새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남북당사자간 대화와 4자회담의 병행
원칙에 기본적으로 찬성한다.

4자회담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해 절실히 필요한 회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새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체제 구축이나
남북경제협력사업, 적십자회담을 통한 이산가족 상봉 및 생사확인,
면회소 설치, 고향방문단 구성 등은 본질적으로 당사자간 대화가 아니면
풀릴수 없는 문제들이다.

때문에 우리는 새정부의 의욕적인 남북관계 개선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새정부가 내놓고 있는 식량및 비료제공, 민간차원의 나진-선봉지구
합동농장 건설 등의 대북지원 조치들이 인도적 차원에서 뿐만아니라
남북당국자간 직접대화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 정부가 이번 제네바 4자회담 기간중 남북수석 대표 접촉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문제는 새정부의 대북제의나 계획이 과거 정권출범 초기에 흔히 보아왔듯이
사전조율을 충분히 거치지 않은 성급한 것이거나 "외교적 한건주의"가
아니냐 하는 점이다.

본질적으로 남북대화는 북한의 태도에 근본적 변화가 없으면 결실을 맺기
어렵다는 것은 남북관계 반세기의 역사가 증명한다.

최근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반응은 "긍정적"이라기 보다는 "유보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미 국무부가 4자회담을 앞두고 가진 브리핑에서 한국의 새정부에 대한
북한의 태도를 "부정적 반응을 자제하고 있는 수준"으로 평가한 것도 눈여겨
보아야할 대목이다.

북한의 태도는 근본적으로 달라진게 없는데 우리만 일방적으로 서두르다
보면 지난 정권에서 그랬던 것처럼 내부혼란만 조장하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이나 남북화해는 정권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의 장래가 걸린 중대사안이다.

때문에 당리당략이나 정략을 배제하고 확고한 원칙에 따르는 것이 좋다.

지금으로서는 남북관계에 해빙 기운이 조성되고 북-미 고위급회담이나
4자회담의 분위기도 괜찮은 편이지만 과거의 행태로 보아 북한은 언제
어떤 주장을 들고나와 판을 깨버릴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당사자간 대화이건, 4자회담이건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북한의 속셈을
꿰뚫어보는 치밀하고도 신중한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