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한파를 녹이는 한줄기 훈풍이 불고 있다.

외채상환 금모으기 국민운동이 그것이다.

한사람당 평균 19돈쭝의 금이 모아졌다.

보상을 원하지 않는 헌납총량도 79kg나 된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것은 돌반지나 사연이 절절한 결혼기념 목걸이, 가보로
내려오던 포상메달은 많은데 부유층의 덩어리 금은 들어오지 않는다.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금거북, 행운의 열쇠 등 1백4돈쭝을 내놓았다.

그보다 앞서 이희호 여사가 금을 헌납하였다.

그러나 정작 나와야할 금이 안나오고 있다.

국회의원 옷깃에서 번쩍이는 금배지다.

비록 순금이 아니라고 하지만.

오늘 한국이 국가부도 위기에까지 몰린 것은 대통령의 실정과 기업들의
방만한 경영탓만은 아니다.

정치권의 책임도 적지 않다.

국회의원들은 금배지를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다니지만 그들이 하는 정치가
과연 그 금배지에 값하는 수준이며 내용인가.

이 지구상 어느나라 국회의원들이 금배지를 달고 위세를 부리는가.

때마침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금모으기 운동은 국회의원들이 명분있게
금배지를 떼어버릴 호기다.

어쩌면 상당수의 국회의원들에게는 금배지를 달지 않는 것이 유일하게
"업적"이 될는지도 모른다.

금배지를 떼어버리면 국회의사당과 의원회관 수위들이 몰라보고 출입을
막을 것을 염려할 필요는 없다.

의정활동을 잘하면 TV나 신문을 통해 얼굴이 널리 알려질 것이다.

수위들은 수위들대로 의원들의 사진을 놓고 얼굴을 익히면 된다.

금배지를 달고 다니면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는 착각만 버리면 일은
간단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당나귀에게는 금덩어리보다 한다발의
마른풀이 소중하다고 갈파했다.

모든 것의 가치는 상대적이라는 의미의 명언이다.

국회의원 시세도 한국의 원화가치 만큼 떨어진 이때 금배지를 앞장서서
달지 않는 국회의원이야말로 존경받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