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연휴때 뉴욕에 사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그가 들려준 웃지못할 얘기는 연휴내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브로드웨이 32번가를 걷다가 한 인도인 거지와 마주쳤는데 그는 대뜸
나에게 한국인이냐고 묻더군.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고개를 돌려버리잖아.
나는 그 거지가 왜 나를 피했는지 모르겠어. 한국인은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는 차별근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경제위기에
빠진 한국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인지..."

인도 거지가 한국인을 피한 이유가 어느쪽에 있든 씁쓸한 생각이 든다.

차별근성 때문이라면 한국인은 아직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얘기다.

경제위기 탓이라면 그저 창피할 뿐이다.

선진국들의 사교모임이라는 OECD에 가입한지가 엊그제다.

그새 인도거지의 동정을 받는 처지가 되다니.

세상 돌아가는걸 그렇게까지 몰랐단 말인가.

사실 우리는 그동안 어떻게 세계인들과 함께 어울려야 하는지, 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모르고 살아왔다.

주변 환경과 여건은 계속 변하고 있었으나 우린 경제성장의 헛바람만 든채
변화를 외면했다.

모든 것을 옛날식으로 생각하고 처리해 왔다.

"Segehwa"라는 발음조차 어려운 해외 홍보용 영어단어를 만들어냈지만
정작 "세계화"에는 실패한 셈이다.

그 결과가 바로 지구촌의 문제아(?)로 찍힌 초라한 "오늘"이다.

세계화는 변화에의 대응이 핵심이다.

세계화를 하려면 굳을대로 굳어진 우리의 안목과 의식을 떨쳐 버리는 것이
출발점이어야 했다.

그것은 바로 "사고의 세계화"가 전제되어야 했다는 얘기다.

사고가 세계화되면 자연스레 행동도 세계화된다.

그래야만 세계인들과 나란히 함께 할 수 있다.

돈 몇푼 벌었다고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로 관광을 가서 1백달러짜리
지폐를 부채처럼 펴서 흔들고 다녔던 "어글리 코리안(Ugly Korean)"도 바로
사고의 세계화가 안됐던 탓이다.

"사고의 세계화"가 가장 시급한 곳은 정치권이다.

우리 정치인들은 그동안 정부와 금융계를 통해 실물경제를 주물러 왔다.

그런만큼 비자금 등 "정치수익률"은 사채시장금리를 훨씬 웃돌았다.

고수익이 보장되는 정치권은 그래서 만년 공급초과양상을 보여왔다.

작은정부 민영화 개방화의 물결이 한국에 와 닿지 못한 큰 이유도 따지고
보면 정치권에 있다.

세계화된 사고에 기초한 선진정치를 구현하려면 잉여인력을 뽑아내는
정리해고도 우선 정치권부터 시행돼야 할 것이다.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코흘리개같은 기업들을 보호육성하기 위해선 정부가 밥숟갈을 입에 떠
넣어줄 수 밖에 없다는 이른바 "스푼피딩(spoonfeeding)" 정책은 뇌리에서
아예 지워야 한다.

기업들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 해외시장에 나가 싸우고 이겨 돌아올 수
있도록 측면지원하면 그만이다.

이는 과감한 규제혁파를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다.

미국이나 일본 등을 더이상 "너죽고 나살기"식의 경쟁상대국으로만 봐서도
곤란하다.

한국기업은 무조건 선이고 외국기업은 악이라는 감정적인 접근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우리기업들이 쓰러지고 사라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미국인들이라고 팬암항공사가 사라지고 제니스가 LG에 넘어갈 때
안타깝고 서운하지 않았을까.

한국 제품을 쓰는 외국인들은 애국심도 모르고 간도 쓸개도 없는 사람일까.

한쪽에선 경쟁(competition)을 하지만 다른 한쪽에선 협력(cooperation)도
해야하는 "협력경쟁(copetition)의 시대"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한국은 지금 6.25동란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경제주권상실"이니, "신식민지"니 하는 말까지 나온다.

학자들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그 원인을 "이론"으로 만들려 한다.

하지만 자고나면 물가가 치솟는게 서민들의 "현실"이다.

감원 감봉같은 단어가 더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닐 정도의 매서운
"IMF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한국민은 위기에 강한 민족이다.

지금도 온 국민이 금모으기운동에 나서는 등 위기극복노력이 한창이다.

그러나 진정코 한국이 다시 살아나려면 "신뢰할 수 없는 국가"란 멍에를
하루빨리 벗어야 한다.

경제위기가 회복되지 않는 것도 금이 모자라서기 보다는 세계인들이
우리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뢰회복은 금모으기보다 더 힘들다.

그런만큼 국제사회에서 인정할 때까지 시간을 갖고 행동과 실천을 통해
보여줘야 한다.

브로드웨이의 거지에게 또다시 모욕을 당할수는 없지않는가.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