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축구 한.일전이 끝난후 "졸전, 충격, 허탈"등의 표현이 난무하는
것을 보고 "골프만큼은 참 행복한 운동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골프는 전대회의 10% 정도만 이겨도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다.

아니 10%가 아니라 메이저 대회같은 아주 중요한 게임 한 대회만
우승해도 "세계 정상"으로 대접받는다.

스포츠의 진실은 "질 수 있다"는 속성에서 출발한다.

어느팀이든 전부 이긴다고 가정하면 무슨 재미로 관전하는가.

패할 수 있기 때문에 이기길 바라며 응원하는 것이며 설사 진다해도
다음을 기약하는 식이다.

바로 그같은 속성 때문에 스포츠에서 "기대를 충족시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객관적 전력이 어떠하건 "기대"는 제삼자의 몫일 뿐이며 선수들은 "항상
이길수 없는 진실"의 당사자가 된다.

그런데 박세리(21.아스트라) 만큼은 보기 드물게 "기대만큼의 충족"을
골프팬들에게 선사했다.

미 여자프로테스트에서 1위를 차지했고 오랫만에 출전한 국내 2개
대회에서도 모두 우승했다.

골프우승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골퍼라면 박세리의 선전이 너무
대견할 수 밖에 없다.

사실은 한국월드컵축구팀도 마찬가지다.

본선 진출에 성공한 것은 "100% 기대충족"이다.

박세리가 최종라운드에 OB를 몇방내며 부진했다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그녀가 우승하면 그녀는 "최고의 선수"가 된다.

욕심은 끝이 없지만 더 이상 뭘 바라는가.

상대는 일본이 아니라 "세계"이고 그 과정에서의 "굴곡"은 골프나
축구나 인정받아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