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속수무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내년결산을 어떻게 해야 할지 벌써
부터 눈앞이 캄캄합니다"(한화에너지 김학수 업무부장)

최근의 환율폭등을 바라보는 정유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은 우려를 넘어
공포에 가깝다.

전형적인 내수업종인데다 원료인 원유를 값비싼 외화를 주고 1백% 해외
시장에서 사다 써야 하는 정유업계의 특성상 환율급등의 피해를 피할 길은
애초부터 막혀 있다는 탄식인 셈이다.

정유업계의 올 한햇동안 원유도입예상량은 8억배럴 안팎.

평균도입단가를 배럴당 20달러씩 잡고 환율이 연간 1백원만 뛴다고만 해도
국내 5개 정유사가 안게 되는 금년도 환차손은 줄잡아 1조6천억원에 이른다.

환율급상승에 따른 피해를 개별업체별로 따져봐도 사정은 업체마다 별다를
바 없다.

SK(주)의 경우 6월말 현재 31억9천8백만달러의 외화부채를 안고 있어
환율이 달러당 1천원고지에 오르면 연간 5천4백13억원의 환차손을 떠안게
된다.

외화부채가 18억5천만달러에 달하는 쌍용정유는 3천40억원, 8억3천5백만달러
인 한화에너지는 1천6백5억원의 환차손을 입게 되는 것으로 대우증권은 분석
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정유업계가 환차손을 사전에 막을 길도 없지만 이를 풀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가격인상 한가지 밖에 없다는데 있다.

정유업계는 평균환율이 5원 오를때마다 유종평균으로 0.3%의 인상요인이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SK 한봉근 업무팀장)

정유5사는 당장 환율변동을 이유로 휘발유와 등.경유를 1일부터 리터당
최고 34원까지 올린 상태다.

정유업체들은 결제통화다변화, 중계수출및 선물환이용확대 등 적자축소에
도움이 될만한 방법을 모두 강구하고 있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환차손
앞에서는 근본적인 치유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가격인상이 최선이긴 하지만 물가에 주는 충격을
생각해 볼때 이마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대로 가다가는 아무손도 써보지
못한채 정유5사가 모두 빚더미 위에 주저 앉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석유화학업계도 정유업계에는 비할바가 못되지만 환율폭 등에 따른 부담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나프타 등 주요원자재의 50%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다 국산원자재의
경우도 수입가격에 연동해 달러베이스로 사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판매가는 수출이든 내수든간에 국제가격에 맞추어 정하고 있어 환율
인상에 따른 부담을 전가할수 없는 형편이다.

뿐만 아니다.

각 업체마다 갖고 있는 외화부채규모가 만만치 않아 연말에는 이에따른
환산손(외화부채에 대한 평가손)까지 고스란히 장부에 반영해야 한다.

지난 6월말현재 LG화학이 4억1천6백만달러의 외화부채를 지고 있는 것을
비롯 한화종합화학과 대림산업이 각각 2억6천만달러, 1억3천만달러의 외화
부채를 안고 있다.

반면 환율인상에 따른 수출경쟁력의 제고효과는 기대했던 것보다 미미하다.

올 수출목표인 62억달러도 물량으로 밀어붙어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보다 더 큰폭으로 자국화폐가 절하된 동남아국가들의 덤핑공세 때문에
수출경쟁력이 살아날 틈이 없다.

유화업계는 한마디로 공급과잉으로 국제가격회복이 더딘 시점에서 환율
폭등이라는 악재를 만나 비틀거리고 있다.

업체마다 단기차입금의 비중을 줄이고 해외에서의 신규투자를 연기하는 등
자구노력을 펼치고 있지만 고스란히 앉아서 보는 손해를 막아내지는 못하고
있다.

< 양승득.권영설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3일자).